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상장기업들이 정기 주주총회 장소 확보 ‘대란’을 겪고 있다. 유가증권·코스닥시장 상장사 60여 곳이 원래 예정했던 정기 주총 장소를 바꾸겠다고 공시했다. 코로나19로 미리 확보해둔 장소의 예약이 취소된 데 따른 것이다. 정기 주총장을 두 번이나 바꾼 사례도 등장했다.
1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이날 오전까지 정기 주총 개최 장소 변경 공시를 한 유가증권 및 코스닥 상장사(스팩 등 특수목적회사 포함)는 64곳이다. 날짜 및 시간만 변경하기로 한 상장사도 18곳이다. 상장사 80곳 이상이 정기 주총 장소 또는 일정을 바꾼 것이다.
변경 사유의 대부분은 코로나19와 관련돼 있다. 원래 정기 주총을 열려고 했던 장소에서 대관 취소 결정을 내린 사례가 대다수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카프로, SPC삼립, 코스닥 상장사인 씨에스베어링, 라이온켐텍, 와이지엔터테인먼트 등이 대표적이다.
정기 주총 장소를 두 번이나 바꾼 상장사도 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대림통상은 지난 12일 기존 장소의 휴관 때문에 사옥으로 주총장을 변경하겠다고 공시한 이후, 16일 다시 외부 장소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정기 주총(20일)을 코앞에 두고서다.
대림통상 측은 “사옥보다 여건이 나은 외부 장소를 계속 물색하다가 대체 장소를 찾아 긴급하게 바꾸게 됐다”며 “기존 장소에도 직원을 배치해 주주들을 안내하고 개최 시간을 다소 늦춰 주총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는 20일 200여 곳이 한꺼번에 정기 주총을 여는 ‘슈퍼 주총 데이’가 임박하면서 상장사들의 주총장에 대한 고민은 커지고 있다. 주총 예정 장소에 확진자가 다녀가는 등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코스닥 상장사인 톱텍과 레몬은 기존 예약 장소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간 것으로 확인돼 사옥으로 주총장을 변경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만 해도 상장사들은 외부에서 주총장을 물색했다. 본사 및 주요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난달 말부터 공공시설의 휴관 통보가 잇따르고 민간시설도 주총장 임대를 하는 데 난색을 보이고 있어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최근 주총장 변경 공시를 낸 한 상장사 관계자는 “코로나19로 기존 예약이 취소돼 전 직원이 1주일 동안 새 장소를 찾는 데 투입됐다”며 “간신히 새 장소를 확보하긴 했지만 코로나19 확진자 방문 등으로 또 취소될 가능성이 있어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장사 관계자는 “주총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큰 강당 또는 회의실이 있는 사옥을 보유한 상장사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본사가 협소한 상장사는 ‘플랜B’ 마련도 마땅치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대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공공시설에서 정기 주총을 열기 어려워지면서 일부 기업은 호텔 등 고가의 대관료를 내야 하는 장소로 주총장을 변경하고 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현대중공업지주, 현대에너지솔루션, 코스닥 상장사인 엔텔스, 세경하이테크, 아모텍, 테라젠이텍스 등은 호텔로 장소를 바꿨다. 코로나19 사태가 기업들의 정기 주총 개최 비용을 늘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