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증시의 바로미터’인 미국 뉴욕증시가 최근 두 달간 30%가량 떨어졌지만 시장 참가자들의 불안은 더 커지고 있다. 주가가 상당폭 하락하면 반등 기대가 생기는 게 일반적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공포 때문에 월가에선 반등을 얘기하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불안감이 지표로 나타나고 있다.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VIX)는 16일(현지시간) 전 거래일보다 42.99% 폭등한 82.69를 기록했다. 2008년 11월 세운 80.74를 넘는 사상 최고 기록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공포가 더 커졌다는 뜻이다.
“124년 역사상 두 번째 최악의 날”
뉴욕증시에서는 16일 개장 직후 거래가 15분간 중단되는 서킷브레이커가 또다시 발동됐다. 최근 6거래일 사이 세 번째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전날 발표한 제로금리 및 700억달러 양적완화 처방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된 탓이다. 뉴욕주의 제조업 지수인 3월 엠파이어스테이트지수가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전달 12.9에서 -21.5로 폭락한 것도 투자심리를 냉각시켰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각국의 봉쇄와 이동제한 조치가 이어지자 불안이 증폭됐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오는 7~8월까지 바이러스가 통제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한 게 폭락을 부추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기 침체 가능성을 묻는 말에 “그럴 수도 있다”고 답했다. 10인 이상 모임 금지 등을 권고하는 가이드라인도 내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6일은 미 증시 124년 역사상 두 번째 최악의 날이었다”고 보도했다. 1987년 10월 29일 하루에 22% 넘게 떨어진 ‘블랙먼데이’ 이후 낙폭이 가장 컸다는 얘기다. 미 증시는 블랙먼데이 직후 곧바로 낙폭을 회복했지만 이번엔 하루가 멀다 하고 10%씩 폭락하는 날이 나오고 있다. WSJ는 시장 변동성과 모멘텀 등을 기반으로 자동으로 매매하는 알고리즘 거래가 하락세를 더 증폭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 증시 일시 휴장 주장도
미 증시가 연일 블랙먼데이 같은 상황을 이어가자 투자자는 대공황급 충격에 빠졌다. 다우존스 마켓데이터에 따르면 S&P500지수는 지난 9일부터 6거래일 연속으로 최소 4% 상승 혹은 하락하는 극도의 변동성을 보였다. 이는 대공황 초기인 1929년 11월 이후 가장 긴 기록이다.
미슬라프 마테이카 JP모간 글로벌 주식 전략가는 “주가가 많이 내렸지만 여전히 주가수익비율(PER)은 14~15배로 최근 침체 때 10배 수준보다 높다”고 지적했다. 골드만삭스도 S&P500지수가 2000선까지 내려가야 바닥을 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16% 더 떨어질 것이란 얘기다.
Fed가 기업어음(CP) 매입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기업들이 발행한 3개월물 CP 금리와 하루짜리 초단기자금 금리의 차이는 2008년 이후 최대인 1%포인트까지 확대됐다. 마크 카바나 뱅크오브아메리카 채권전략가는 “CP 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었다”며 “Fed가 개입해 매수해야 시장이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엔 Fed가 CP 매입에 나섰지만 이번에 이 같은 대책이 빠져 있는 게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월가에선 서킷브레이커가 불안을 잠재우는 효과가 없다는 비판이 강하다. 블룸버그통신은 현재의 투매를 진정시키기 위해 일시 휴장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필리핀 정부는 17일 당분간 주식, 채권, 통화 등 금융시장 거래를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