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일정 기간 규제를 유예해 주는 ‘규제 샌드박스’를 활용해 모빌리티(이동수단) 업체들을 지원하기로 했다. 새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이 시행되기 전이라도 자유롭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몇 대의 차량을 운행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총량제’와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내야 하는 ‘기여금’ 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모빌리티 업체 사이에선 규제 샌드박스만 믿고 사업을 진행하는 게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의 당근은 ‘규제 샌드박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17일 서울 중구 서울시티타워에서 KST모빌리티(마카롱택시), 큐브카(파파), 벅시, 카카오모빌리티 등 13개 모빌리티 업체 대표와 간담회를 했다. ‘타다금지법’으로 불리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 11일 만이다.
김 장관은 이 자리에서 “개정안 시행 전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1년 후 새 법이 시행되기 전이라도 규제 샌드박스를 활용해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으라는 의도다. 스타트업엔 플랫폼 운송사업 기여금을 감면해주겠다고도 했다.
택시에 플랫폼을 집어넣는 플랫폼 가맹사업 기준도 밝혔다. 서울을 기준으로 확보해야 할 면허의 숫자를 4000대에서 500대로 낮추기로 했다. 운전기사 자격 요건도 완화하기로 했다. 1~2일 안에 운전 자격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게 국토부의 방침이다.
총량제에 대한 언급 없어
업계의 관심은 운행 대수 제한을 완화할지 여부에 쏠려 있다. 그동안 정부는 업계에 택시 감차로 확보한 면허를 매입해 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모빌리티 업체들은 감차를 기다리다가는 적기에 사업을 확장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렌터카 등을 활용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업체들은 좀 더 구체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규제 샌드박스의 문턱을 통과했다고 해도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게 쉽지 않다”며 “택시 감차로 찔끔찔끔 나온 면허를 여러 업체가 나눠 가진다면 ‘규모의 경제’가 불가능하고 투자를 받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카카오 T 블루’와 같은 프랜차이즈 택시업체들의 반응은 정반대다. 이번 간담회를 통해 얻어야 할 것을 대부분 얻었다는 반응이 나온다. 플랫폼 가맹사업 면허 기준 대수를 대폭 완화한 게 가장 큰 소득이다. 500대 수준으로 플랫폼의 시장성을 테스트하는 게 가능해졌다는 설명이다. 2주 걸렸던 기사 자격 시험이 1~2일로 줄어드는 것도 호재다. 기사 수급이 조금이나마 수월해질 전망이다.
문 닫는 ‘타다’로 홍보 나선 국토부
‘타다’를 운영하는 VCNC는 이날 간담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VCNC는 여객운수법 통과 직후 11인승 승합차를 이용해 차량과 기사를 동시에 호출하는 ‘타다베이직’ 서비스를 접겠다고 발표했다.
이날 국토부 홈페이지도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메인 화면에 올린 “타다가 더 많아지고 다양해집니다. ‘타다금지법’이 아니고 ‘모빌리티 혁신법’”이라는 문구가 문제였다.
이재웅 전 쏘카 대표는 이 문구와 관련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가 하루아침에 법 개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수천 명의 국민과 수백억원의 투자금을 손해 본 국민을 상대로 사과하고 대책을 마련하지는 못할망정 조롱을 한다”고 비판했다. 스타트업 단체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의 최성진 대표도 “타다를 이용한 국토부의 광고에 깊은 유감”이라며 “타다에 대한 조롱을 넘어 스타트업 업계 전체를 좌절하게 하는 광고를 중단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여객운수법 개정안을 홍보하기 위해 올린 것”이라며 “타다와 같은 서비스가 더 많아진다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김남영/양길성 기자 n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