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7일 현재 국내외 경제상황을 ‘미증유의 비상시국’으로 규정하고 비상경제회의를 구성해 직접 경제상황을 챙기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미국 유럽과 한국이 동시다발적으로 금리를 인하했는데도 각국 증시가 급락하고, 인적·물적 교류가 차단되는 전대미문의 상황을 맞아 특단의 대책 마련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도 ‘비상’이라는 단어를 14차례나 사용하며 “이것저것 따질 계제가 아니다”고 위기감을 드러냈다. 비상경제회의는 시장 변화에 대처하고 정책을 계획·집행하는 사실상의 최고 의사결정기구가 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비상경제회의는 비상경제시국을 헤쳐나가는 ‘경제 중대본’이며, 방역 중대본과 함께 비상 국면을 돌파하는 두 축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역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을 맡고 있는 정세균 국무총리가 담당하고, 경제는 대통령이 비상경제회의를 통해 대응하는 ‘투 트랙’ 전략으로 코로나19 사태의 파고를 돌파하겠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은 “세계가 바이러스 공포에 휩싸이며 국경을 봉쇄하고 국가 간 이동을 차단하는 등 인적 교류가 끊겨 글로벌 공급망이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한국 기업의 수출 비중이 높은 중국의 지난 1~2월 생산·소비·투자 등 3대 핵심 지표가 모두 전년 대비 -13~-24% 곤두박질치는 등 코로나19의 경제적 파장이 현실화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본격적인 감염 확산까지 감안하면 실물경제에 미치는 후폭풍을 가늠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문 대통령이 “지금 상황은 금융분야 위기에서 비롯됐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양상이 더욱 심각하다”며 비상경제회의 가동을 지시한 것도 이런 위기의식에서다.
문 대통령은 “추경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내수 위축은 물론 세계 경제가 침체로 향하는 상황에서 경제와 민생을 지키기 위해서 불가피하다면 더한 대책도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장 18일 청와대에서 경제4단체와 양대 노총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경제주체 원탁회의에서 비상경제회의 운영 방향의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8일 비상경제회의의 운영 방식과 민간을 포함한 참석 대상을 밝힐 것”이라며 “19일 대통령 주재로 첫 회의가 열린다”고 설명했다.
대통령 주재로 정례회의를 열고 별도로 긴급 상황이 생길 때마다 수시 회의가 이뤄지는 방식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홍 부총리를 비롯한 경제부처 장관과 청와대 경제참모들이 핵심 인적 구성을 이루는 가운데 기업, 학계 등 외부 민간 전문가도 일부 참석할 것으로 점쳐진다.
과거 정부에서도 경제위기 때마다 비상경제회의가 가동된 바 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의장을 맡아 경제부처 장관, 한국은행 총재, 청와대 수석 등 10명이 참석하는 경제대책조정회의가 매주 한 차례 열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비상경제대책회의가 가동돼 거시·일자리, 실물·중소기업, 금융·구조조정, 사회안전망 네 개 분야에 프로젝트 실행 책임자를 지정하는 등 경제 전반의 상황을 수시로 점검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비상시국에 문 대통령이 수시로 경제상황을 보고받고 정책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정책 집행의 신속성과 과감성이 크게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