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연 0.75%로 낮추며 ‘0%대 기준금리 시대’를 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경제적 충격이 실물을 넘어 금융으로 번져가는 등 복합위기 우려가 확산된 데 따른 ‘긴급 처방’이다. 경제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자금난을 겪는 자영업자·중소기업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실물경기 부양 효과는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한계기업 퇴출을 막고 부동산 가격을 띄우는 등 부작용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은이 0.25%포인트 더 내릴 여력이 있지만 다음달에는 인하 카드를 아낄 것으로 봤다.
“벼랑 끝 자영업자 지원 나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것은 시중에 유동성을 불어넣어 코로나19로 얼어붙은 가계·기업 심리를 녹이고 실물경제를 부양하기 위한 포석이 깔려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금리 인하 배경에 대해 “어려움을 겪는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차입비용을 가능한 한 큰 폭으로 낮춰줄 필요가 있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도 기준금리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낮아짐에 따라 일시적으로 자금난을 겪는 기업들이 자금 경색을 해소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것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가계·기업 심리 위축이 경제 문제가 아니라 감염증 확산에서 비롯한 만큼 실물경제 부양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리가 내려간다고 감염을 우려하는 가계가 다시 바깥활동에 나서고 방역을 위해 멈춘 공장이 당장 재가동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가 저금리로 연명하는 이른바 ‘좀비기업’ 퇴출을 막는 등 경제 구조개혁을 가로막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은에 따르면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 미만인 한계 기업은 2018년 전체 외부감사 기업 가운데 14.2%(3236개)로 전년에 비해 0.5%포인트 늘었다.
부동산 가격이 뛰고 외국인 자본 유출을 촉진하는 등 금융안정이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 총재는 이에 대해 “정부가 거시건전성 정책을 펴는 등 부동산시장 안정에 노력을 기울인 데다 글로벌 경기 위축 우려도 높아지면서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이 같은 진단에 대체로 동의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영업자와 일부 가계가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을 줄줄이 처분하면서 집값 상승세가 꺾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거시건전성 규제 사각지대인 일부 수도권은 ‘풍선효과’와 저금리 여건이 맞물려 오름세를 보일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기준금리 인하 여력 있지만…”
한은의 향후 통화정책 행보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연 0.5%까지 내릴 여력이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이 총재도 16일 “기준금리의 실효하한(유동성 함정과 자본 유출 등을 고려한 기준금리의 하한선)은 국내외 금융시장의 상황 변화 등에 따라 상당히 가변적”이라며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하가 실효하한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사실상 추가 인하 가능성을 내비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음달 9일 열리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박석길 JP모간 본부장은 “금융안정에 대한 한은의 우려가 여전히 깊어 당분간 연 0.75%의 기준금리를 유지할 것”이라며 “추가 금리 인하보다 금융회사에 대한 유동성 공급이 더 유력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은이 국채 매입 등 양적완화를 언급했다”며 “다음달 한은은 기준금리를 동결하는 한편 국채 매입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위기가 단시간 내에 가속화하면 4월에 금리를 추가 인하할지 모른다는 전망도 있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미국 기업의 신용등급이 무더기로 강등될 수 있고 미국 금융시장의 자금 경색 우려가 상당하다”며 “글로벌 금융시장이 2008년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만큼 한은이 금리를 더 낮출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