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신규 확진자가 주말을 기점으로 100명 안팎으로 줄었다. 아직 안심은 금물이지만 하루 500명 이상씩 늘던 것이 불과 열흘 전임을 감안하면 다행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한 시민의식, 진료 일선 의료진의 희생정신 등이 이뤄낸 결과다.
‘한국식 방역모델’을 배워야 한다는 외신 뉴스까지 등장했다. 이에 동조해 정부와 여당 내에서도 자화자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지역 차단 없이 성공했다는 ‘한국식 방역 모델’을 섣불리 자랑하기에 앞서 몇 가지 한국적 특수성을 짚어봐야 한다.
우선 확진자의 이동 경로와 감염원 추적에 이용되는 행정시스템.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는 금융결제원 등으로부터 카드 이용내역 등을 받아 확진자의 진술과 대조해가며 동선을 분석한다. 주민등록번호만 있으면 출입국 및 여행 국가 관련 정보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 전파로 골머리를 앓는 미국과 유럽, 일본 등 많은 국가에는 이 같은 수단 자체가 없다. 13자리의 번호 안에 개인정보가 집적되는 행정시스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서다. 카드 결제 비중이 낮아 금융 거래 정보를 통해 동선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선진국과 비교해 지나친 사생활 침해라는 비판을 받아온 한국 주민등록 제도 등이 재난 상황에서 힘을 발휘한 부분이다.
징병제도 코로나19 방역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공중보건의 750명을 대구·경북 지역에 일시에 투입하는 등 의료 자원을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징병제를 통해 얻은 인적 자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국 등이 한국식 방역모델에 주목하면서도 실제로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은 ‘승차 진료(드라이브스루 진료)’ 정도인 이유다. 신천지를 중심으로 한 한국의 특이한 코로나19 전파 양상도 지역 봉쇄 없는 ‘열린 방역’을 가능하게 했다. 지난 14일 방대본이 밝혔듯 국내 코로나19 감염자의 62%는 신천지와 관련됐다. 공공의 방대한 개인정보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부는 신천지 신도들이 어디서 일하고 있는지까지 추적했다. 핀셋으로 신천지 신도들을 집어내는 것만으로도 방역을 상당 부분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광범위한 전파가 일어난 중국과 이탈리아, 이란 등과 전혀 다른 방역 환경이었다. 만약 대구에서 신천지 교회를 전파원으로 특정하지 못하고 수천 명의 집단감염이 쏟아졌다면 지역 봉쇄는 불가피했을 것이다.
결국 오늘의 전염병 방역은 어제까지 수십 년간 가다듬어온 행정시스템에 상당 부분 기댄 결과다. 내일 이후 필연적으로 다가올 새로운 감염병 위기에 대비해 우리 시스템과 사회 문화를 어떤 모습으로 바꿀지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