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락 트리거 진단]코로나19·국제유가·트럼프…'13일의 금요일' 주인공들

입력 2020-03-13 15:51
수정 2020-03-13 15:53


간밤 유럽 및 미국 증시의 폭락에 이어 '13일의 금요일'을 맞은 한국 증시도 급락했다.

13일 한국 증시에서는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 모두 장중 8% 이상의 폭락이 1분 간 지속돼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코스피 서킷브레이커는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한 직후인 2001년 9월12일 이후 18년 6개월 만이다. 코스닥은 2016년 2월12일 이후 4년 만에 처음으로 발동됐다. 당시 세계 경기침체 우려가 확대되면서 해외 주요 증시가 급락했고, 북한 위험 등 지정학적 리스크도 부각됐었다.

◆코로나19 세계 수요·공급 훼손…"4월1주차 변곡점 예상"

한국을 비롯한 세계 증시 대폭락의 첫번째 방아쇠(트리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공포다. 전염 우려에 따른 외부 활동 기피에 소비수요가 둔화됐고, 확진자 발생으로 인한 공장 폐쇄로 공급망이 망가져서다. 미중 1단계 무역합의로 회복을 예상했던 올해 세계 경제의 회복 기대가 무너졌다.

이효석 SK증권 연구원은 "올 1월 봤던 세계 경제의 회복, 주가 상승은 코로나19의 등장으로 완전히 달라졌다"며 "문제는 코로나19의 2차, 3차 확산이 벌어지면서다"라로 말했다.

이탈리아는 전국을 봉쇄하기에 이르렀고, 미국은 유럽으로부터의 입국을 막았다. 사람과 상품의 이동이 제한되고 소비가 급격히 위축되는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

가장 나쁜 상황은 코로나19 사태가 금융위기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일반적으로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주가는 -50% 수준까지 급락한다"며 "올해 코스피지수 최고점이 2267을 적용해보면 약 1100 수준까지 하락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 시장이 극단적인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돼야 한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중국과 한국의 사례에서 코로나19 확진자수는 급증하기 시작한 시점(인구 1억명당 100명 신규 확진)부터 약 2주 후부터 증가세가 둔화됐다. 중국은 증가세가 본격화된 후 20일이 지난 시점에 둔화됐고, 한국은 12일이 걸렸다.



박소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는 유럽이나 미국도 확진자수 증가세가 본격화된 후 대략 16~20일 후부터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라며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확진자가 급증하기 시작한 것은 2월 24일과 2월 29일인데, 추정이 유효하다면 다음 주부터 유럽 확진자수 증가세는 차츰 둔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문제는 미국이다. 이제 막 확진자가 급증하는 단계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3일부터 확진자가 본격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앞으로 2주간은 증가 구간이다. 내달 초를 최대 고비로 봤다.

박 연구원은 "미국의 확진자가 감소하기 시작하는 시점이 세계 코로나19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며 "이는 4월1주차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트럼프에 흔들린 증시…기대가 공포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설에 대한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돌아서면서 뉴욕 증시와 국내 증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증시 폭락에 일조했다. 대국민 연설의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돌아서면서 국내 증시에 악영향이 미쳤다. 서상영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트럼프 대통령 연설에 대한 실망감이 코로나19 공포로 확산하면서 뉴욕 증시와 국내 증시가 타격을 입었다"며 "특히 유럽과의 교류를 차단하는 악수를 내놓으면서 투자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었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현지시각)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일부 개인과 사업체에 대한 세금 납부 유예 등의 경기 부양책을 내놨다. 코로나19 공포로부터 국민을 안심시키고 시장을 북돋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급여세 감면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서 정책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고, 오히려 유럽 입국 봉쇄가 경기둔화를 부채질 할 것이란 공포를 확산시켰다.

간밤 유럽 중앙은행(ECB)이 시장 예상과 달리 금리를 동결한 것도 투자 심리 위축에 영향을 줬다.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불러온 '검은 목요일'이 국내 증시에 악영향을 줬고 ECB의 안일한 대응이 공포를 키웠다는 분석이다.

서 연구원은 "국내 증시는 트럼프의 경기 부양책에 대한 실망감에 유입되면서 급락했고 당분간 적극적인 대응이 부재할 것이라는 공포감으로 패닉에 빠졌다"면서도 "ECB가 추가 유동성 공급을 발표했고 미국 중앙은행(Fed)의 추가 금리인하가 예상되는 만큼 공포 심리가 완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국제유가 폭락, 증시 유탄…"기대 인플레이션 훼손"

국제유가의 하락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전문가들은 국제유가 하락이 기대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을 훼손했고, 이에 따라 금융시장에 패닉이 왔다고 설명했다. 폭락한 유가는 2분기부터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12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배럴당 4.5%(1.48달러) 내린 31.50달러를 기록했다. 장중에는 31.50달러까지 밀리면서 30달러선이 위협받기도 했다. WTI는 최근 '롤러코스터' 장세를 보였다. '증산 전쟁' 우려 속에 지난 9일 24.6% 곤두박질쳤다가, 10일 10.4% 급반등했지만 11일에는 다시 4.0% 급락했다.

국제유가가 하락한 것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10개 주요 산유국이 원유 수요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감산을 논의했지만, 러시아가 "감산할 이유가 없다"고 반대하면서 치킨 게임 우려가 확대돼서다.

유가가 급락하는 동안 국내 증시도 바닥을 모르고 하락했다. 코스피지수는 지난 9일 하루에만 4.19% 하락했고, 10일 0.42% 소폭 반등하기도 했지만 11일, 12일, 13일 3거래일 연속 각각 2.78%, 3.87%, 2.61% 떨어졌다. 이날 역시 급락세를 연출했다.

국제유가는 미국 국채 수익률과 함께 경제적인 건강과 신뢰를 가늠하는 바로미터(지표)다. 때문에 유가 하락이 경제 둔화 우려를 키웠고, 증시 역시 악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된다.

구체적으로 국제유가 하락이 기대 인플레이션을 훼손시켜 금융시장의 악영향을 줬다는 설명이다. 기대 인플레이션은 경제 주체들이 예상하는 미래의 인플레이션으로, 지난해 기대 인플레이션이 3개월 연속 최저치를 기록하자 디플레이션(장기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기도 했다.

또 국채유가 하락으로 부채가 많은 셰일가스 기업들의 도산 가능성, 이들에게 돈을 빌려 준 은행들로의 연쇄 타격 가능성이 부각됐다.

국제유가(WTI 기준)는 이르면 4월초 저점을 확인 후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올해 국제유가는 배럴당 43.5달러로 예상된다.

김소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원유수요가 충분히 회복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며 "러시아의 의도대로 미국 셰일 원유생산량이 급속하게 줄어들지 않는다면 유가는 2분기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진우/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jiin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