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 컬처insight] 콘텐츠에서 만난 영웅…코로나 시대 희망을 말한다

입력 2020-03-13 15:13
수정 2020-03-14 02:22

“저는 여기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왜 그리 우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화상통화를 하고 있던 한 여성은 밝은 표정으로 연신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여성과 대화를 하고 있던 개그맨 유재석은 왈칵 눈물을 쏟았다. “자꾸 괜찮다고 하시는데 마음이 아파서….”

지난 11일 방영된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나온 이 여성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자 대구로 달려간 간호사다. 그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자진해 대구로 갔다고 했다. 간호사 얼굴엔 공포를 뛰어넘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사심 없이 간다고 했어요. 제가 먼저 앞장서야죠.”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유재석처럼 눈물이 핑 돈다. 한없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한 코로나 시대, 사람들은 콘텐츠를 통해 ‘영웅’을 발견하고 있다. 가장 많이 보거나 화제가 되는 콘텐츠 대부분이 영웅과 관련돼 있다. 예능이나 뉴스를 보며 현재의 공포에 온몸으로 맞서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에 박수를 치고, 드라마나 영화 속 영웅 서사에도 빠져들고 있다. 이를 통해 오늘의 두려움을 견뎌내고, 나아가 언젠가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사람들은 콘텐츠에 ‘내몰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깥 활동이 줄어들며 집에서 긴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무의식적으로 콘텐츠 안에서 영웅 이야기를 찾고, 위기를 이겨내는 방법들을 발견하고 있는 것 같다. 넷플릭스의 ‘오늘 한국의 TOP10 콘텐츠’에 이달 들어 줄곧 1위에 오른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가 대표적이다. 이 드라마는 전형적인 영웅 서사로 전개된다. 모진 시련을 겪고 복수를 위해 달려가는 청년 박새로이(박서준 분)와 그를 도와 포차 사업을 성장시키는 직원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버지를 잃은 혼혈인, 트랜스젠더 등 세상으로부터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들은 누구보다 단단하다. 끊임없이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아도 박새로이는 이렇게 말한다. “쉬울 거라 생각 안 했어. 어렵게 하면 되지. 당연한 거야.” 시청자들을 향해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더 단단해져야 한다’고 말하는 응원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 ‘킹덤’도 최근 다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13일 시즌 2가 공개되기 앞서 1~2주 전부터 시즌 1이 가장 많이 본 콘텐츠 상위권에 올랐다. ‘조선 좀비물’이란 독특한 소재를 내세웠지만, 큰 줄기는 영웅 서사다. 조선 시대에 원인 모를 전염병이 창궐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하려는 세자 이창(주지훈 분)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염병의 공포를 뚫고 전진하는 이들의 모습은 이 시대 우리가 가장 원하는 영웅의 모습과 닮았다.

하지만 영웅이 꼭 상상 속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엔 대구에 자진해서 간 간호사뿐 아니라 현실 속 수많은 작은 영웅들이 나왔다. 지역별 감염 현황을 알려주는 ‘코로나맵’을 개발한 대학생, 국군간호사관학교 임관 후 곧장 대구로 파견을 간 간호장교 등이 카메라에 담겼다. 이들의 모습은 드라마 속 영웅들보다 찬란히 빛나고 아름다웠다. 이들을 본 많은 시청자들은 스스로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도 방송에 나왔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코로나 여파로 장사가 안되는 상황에서도 더 힘든 이웃들에게 빵을 나눠주는 빵집 아저씨처럼 돼 보는 것이다. 미약하지만 꿈틀대고 있는 내 안의 작은 영웅을 꺼내보는 건 어떨까.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해당 회차 제목은 ‘워리어스(Warriors·전사들)’였다. 우리 모두는 이 시대의 전사들이다.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