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마켓인사이트]한진칼, 의결권 자문사 첫 권고안은 "조원태 연임 찬성"

입력 2020-03-13 17:13
수정 2020-03-13 19:09
≪이 기사는 03월13일(16:09)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민연금이 의결권 자문을 받고 있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이 한진칼 경영권 분쟁에 관하여 조원태 회장 연임에 찬성했다. 또 KCGI 등 주주연합 측 후보에 대해서는 찬성하나 '불행사'를 권고했다. 국내 주요 의결권 자문사 6개사 중 처음 나온 의견이다. 조 회장 측이 다소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는 나오고 있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은 오는 27일 열리는 한진칼 정기주주총회에 올라온 의안 중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및 회사 측이 제안한 이사 후보와 KCGI 등 주주연합의 이사 후보 전원에 대해 찬성하나, 주주연합 측 후보에 대해서는 불행사를 권하는 보고서를 이날 고객들에게 발송했다. 의결권 자문사는 상장사의 주총 안건을 분석해서 찬성 및 반대 권고 의견을 제시한다.

◆조현아·반도건설와 KCGI 간 목적 불일치 우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보고서에서 "이사회 안이 보다 기업의 장기적인 주주가치 제고에 부합하는 것으로 판단한다"며 "상정된 후보가 모두 선임될 경우 이사회 규모가 18인으로서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특히 3자 연합 측 후보 가운데 "KCGI를 제외한 주체들이 추구하는 바가 KCGI와 일치하는지가 불분명하다"며 "조 전 부사장은 이른바 '땅콩 회항'의 당사자"라고 지적했다. 반도건설에 대해서도 "한진그룹이 보유한 유휴자산을 활용한 사업기회가 그 목적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한진칼의 이사회는 KCGI가 기존에 요구한 사항들에 대해 어느 정도 개선을 이뤘다"며 "(3자 연합의) 주주제안 후보 중 전문경영인으로서 활동하게 될 사내이사 2인의 전문성이 이사회 추천 후보에 비해 더 낫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유를 찾기 어렵다"고 적었다.


이번 정기주총에서 KCGI 반도건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으로 구성된 주주연합 측은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을 반대하고 있다. 또 7명의 이사 후보를 추천해 주총에서 표 대결을 예고하고 있다. 주주연합 측이 확보한 지분은 KCGI 17.29%, 반도건설 8.28%, 조 전 부사장 6.49% 등 총 32.06%다.

반면 조 회장 측은 본인(6.52%), 어머니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5.31%), 동생 조현민 한진칼 전무(6.47%), 특수관계인(4.15%), 델타항공(10.00%), 카카오(1.00%) 등 총 33.45%를 확보하고 있다. 이외에 대한항공 자가보험 및 사우회가 보유한 3.8%도 조 회장 측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지만, 주주연합에서 의결권 행사 중지 가처분 신청을 내놓아 불확실성이 있다. 양측이 확보한 지분이 거의 비등한 탓에 국민연금(2.9%)을 비롯한 기관투자가, 소액주주 등이 어느 쪽에 기우느냐가 판을 결정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임시주총까지 영향 미칠 듯
KCGS를 비롯한 자문사들의 권고 내용이 중요한 이유는, 이번 자문 내용이 올해 양측의 경영권 분쟁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분쟁 중인 양측은 올해 정기 주총에 사용되는 주주명부가 작년 12월26일 기준으로 폐쇄됐음에도 지속적으로 지분 매집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3자 연합 중 반도건설은 지난달 13~19일에 5.02%를 더 사들였다.

그러자 조 회장의 백기사로 추정되는 델타항공이 4.9%를 더 사며 '맞불'을 놨다. 카카오도 1%를 더 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KCGI는 지난달 26일 0.54%에 이어 지난 12일 0.56%를 추가로 매집했다.

추가 지분매집 경쟁은 임시 주총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사회 최대인원을 정하지 않은 정관 때문에 정기주총에서 승패가 갈리더라도 임시주총을 열어 추가이사를 선임하는 방식으로 이사회를 다시 장악할 수 있어서다.



그런데 의결권 자문사가 임시주총에서 비슷한 사안에 대해 다른 결론을 권고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번에 자문사들이 권고하는 내용이 올해 전체 '판세'를 결정할 수도 있는 이유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 측의 재도전 의지를 꺾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특히 KCGS에서 자문을 받는 국민연금은 작년 말 주주명부 폐쇄 시점 기준 한진칼 지분 2.9%를 들고 있어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박빙의 승부에 자문사 영향력 커져
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기관투자가들 사이에서는 의결권 자문사의 권고를 따르겠다거나 아예 의결권 행사를 포기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곳이 늘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특별히 이해관계가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어느 한 쪽 손을 들어주면 반대편에서 쏟아지는 비난을 어떻게 감당하느냐"며 "한진칼 주식이 많으면 진지하게 고민할 수도 있지만, 상위 200대 기업에도 들지 않은 한진칼 보유분이래야 얼마 되지 않는 만큼 자문사 권고에 따르거나 아예 포기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자문사 영향력이 특히 커질 수 있는 배경이다.

서스틴베스트,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CGCG) 등 국내 3개사와 외국계 ISS 및 글래스루이스도 내주께 권고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고객들에게 보낼 예정이다. 외국 기관투자가들의 경우 ISS와 글래스루이스의 보고 내용에 더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다.

기업지배구조원은 2002년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협회, 한국상장사협의회 등이 기업의 지배구조를 평가하기 위해 설립한 회사다. 2012년 이 회사가 처음으로 돈을 받고 주총 의안을 분석하는 서비스를 시작한 뒤 잇달아 다른 회사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어 현재의 의결권 자문 '시장'이 형성됐다.

이상은/이태호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