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5세대) 통신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의 주범이라는 소문이 유럽에서 급속히 퍼지는 모양이다. 5G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인체 내 산소를 빨아들여 폐 활동을 막아 폐렴에 걸린다는 것이다. 5G는 인체 내 산소에 들어 있는 분자의 진동을 흐리게 해 바이러스에 쉽게 노출된다는 과학적으로 그럴듯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더구나 중국 우한이 5G 실험을 세계 최초로 한 곳이어서 우한에서 이 감염병이 시작한 것도 결국 5G 때문이라는 해석까지 붙어 이 소문은 날개를 달고 있다.
급기야 전자파 관련 국제단체인 ICNIRP(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가 직접 루머 차단에 나서기까지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11일(현지시간) ICNIRP는 5년간 5G 관련 모바일 네트워크가 인체 건강에 위협이 된다는 과학적인 증거를 조사했지만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위원회는 5G를 포함해 송전 및 변전 시설 등 전자파에 따른 인체보호 기준을 제정하는 기구다. 지난해 말 전 주파수 대역에 대한 기준을 다시 개정하기까지 했다. 영국 정부는 “5G가 주요 통신망으로 자리 잡으면 전자파 노출은 소폭 늘어나지만, 여전히 전체적인 전자파 노출량은 적은 편”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유럽에선 바이러스와 관련된 루머가 극심하다. 3년 전 중국에 귀환한 유인 우주선에서 지구 밖 바이러스가 묻어왔다는 설도 있고, 운석 충돌로 지구에 떨어진 입자에서 바이러스가 나왔다는 괴담도 있다. 물론 그 가운데 가장 설득력을 갖고 회자되는 게 5G와 바이러스의 교감인 모양이다. 근대 과학을 탄생시킨 유럽에서 이런 루머가 횡행한다고 하니 참으로 공교롭다. 유럽에서 5G를 기점으로 한 사회변화의 불안이 세계적 대유행(팬데믹)과 맞물려 괴담을 낳고 있는 모습이다.
정작 미국과 일본, 중국은 대유행을 계기로 5G 투자를 경기회복 카드로 쓰려고 한다. 일본 소프트뱅크는 오는 7월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5G를 상용화하려던 당초 계획을 앞당겨 27일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NTT도코모와 KDDI도 곧바로 5G 서비스를 시작할 태세다. 중국 정부는 지난주 내놓은 경제 안정화 방안에서 5G망 인프라 투자를 서두를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통신회사들도 기지국 건설을 앞당긴다는 소식이다. 미국은 다음달 동맹국의 기업을 백악관으로 초청하는 대규모 5G 행사를 계획하고 있어 많은 인프라 투자가 이뤄질 전망이다. 지금 세계 지형은 그렇게 변하고 있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