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카고 공항.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한 승객이 작은 바에 앉아 통화 중이다. 무심코 땅콩 접시에 손을 댄 그녀는 계산을 위해 종업원에게 신용카드를 건넨다. 스위스 제네바의 한 회의실. 비즈니스로 모인 많은 사람이 악수하며 반갑게 인사한 뒤 회의를 시작한다. 그리고 일본 도쿄의 도심을 달리는 붐비는 버스 안. 한 승객이 수차례 기침을 하다가 하차벨을 누르고 내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하기 전이었다면 이런 풍경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평범하고 일상적인 접촉을 보며 질병에 대한 공포심 혹은 경계심까지는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등장하면서 우리의 일상은 많은 부분이 달라져 버렸다.
위에서 열거한 풍경은 2011년 개봉한 영화 ‘컨테이젼(Contagion)’의 장면들이다. 영화 속 카메라는 여러 도시의 일상적인 순간을 빠른 속도로 잡아내는데, 모두 ‘접촉’에 대한 포착이다. 식당의 물컵, 포크와 나이프가 담긴 공용 그릇, 다닥다닥 붙어 앉은 카지노, 많은 사람이 잡고 있는 지하철의 손잡이, 피트니스 센터에 모여 운동하는 사람들…. 카메라는 사람의 접촉이 일어난 곳을 아주 짧게 응시한다. 마치 그곳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 남은 것처럼.
‘컨테이젼’은 스물여섯 살에 역대 최연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개봉 당시 한국에서는 22만 명 정도가 관람했을 뿐 큰 관심과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약 10년이 지난 2020년 코로나19를 예언한 작품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검색창에 ‘컨테이젼’을 쳐봐도 대중의 높은 관심도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바깥 활동이 최소화된 요즘 안방 극장의 흥행 역시 ‘역주행’ 중이다.
‘컨테이젼’이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것은 놀랍도록 지금의 현실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미국 질병통제센터와 감염 전문가에게서 조언을 받으며 사실적인 연출을 하고자 했던 제작진의 의도 덕택이다. ‘정말 일어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언제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 영화였기에 ‘컨테이젼’이 다루는 바이러스와의 135일간 사투는 매우 사실적이다. 개봉 당시엔 일상적인 접촉만으로 전 세계가 순식간에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사회 시스템이 붕괴되는 과정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보였는지 관객들의 평이 좋지 못했다. 그러나 요사이 영화를 본 관객들의 만점 세례로 ‘컨테이젼’은 평점마저 역주행을 기록 중이다.
감염된 아내와 딸을 간호하게 된 아빠, 최초의 감염 경로를 추적하는 세계보건기구 소속 의학박사, 미국 질병통제센터를 이끄는 리더와 시민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는 의료진, 백신 개발을 위해 노력 중인 연구원 그리고 가짜뉴스와 민간치료 요법을 퍼뜨리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까지. ‘컨테이젼’엔 지금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다양한 군상이 모두 담겨 있다.
왜 인류를 위협하는 바이러스가 생기게 된 것일까? 영화의 마지막 1분은 인류가 이 위협을 이겨낸 이후, 해야 할 ‘다음’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한다. 영화가 희망적인 결론을 맺은 것처럼 바이러스를 이겨낼 날이 곧 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