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안팎에서 금융감독원을 향한 ‘쓴소리’가 늘어나고 있다. 금감원이 지난 2월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판매 손실 사태와 관련해 하나은행과 우리은행 경영진에 중징계를 내린 뒤 논란은 더욱 확산됐다. 금감원이 각 금융회사의 최고경영자(CEO)나 임원을 탓하는 데 급급하다는 지적이다. 금융회사를 제대로 관리·감독했어야 할 금감원은 왜 반성하지 않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금감원에서 임원까지 지낸 한 인사는 “요즘 금감원 행태를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며 “저렇게 마구잡이로 휘두르라고 있는 권한이 아닌데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민간기관의 과도한 권한
금감원의 DLF 사태 관련 제재를 둘러싼 논란은 여럿이다. 금융회사에 대한 검사를 하는 금감원이 처벌 권한까지 갖는 것이 타당하냐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증권사가 내부통제 미흡 등으로 제재받을 때는 금융위원회 의결을 거치도록 돼 있다. 기관 징계 및 과태료 부과도 금융위 의결사항이다. 그러나 은행장이나 은행 임원 개인에 대한 징계는 금감원장 전결로 이뤄진다. 이 부분에 대한 형평성 논란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제기됐다. 정부기관이 아닌 민간기관이 제재 권한까지 갖는 것도 문제인데, 유독 은행에는 그 권한이 더 강력하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 때문에 금융위는 2010년 은행법 개정을 시도했으나 금감원의 반대로 무산됐다.
제재 과정이 ‘금감원 입맛대로’라는 지적도 많다. 그동안은 금융사고가 발생했을 때 금감원이 검사 후 제재심을 올리기까지 6개월에서 1년 정도 소요됐다. 이번 DLF 사태와 관련한 제재는 달랐다. 지난해 11월 검사 종료 후 3개월 만에 결론을 내렸다. 판매된 DLF 대부분은 만기가 도래하지 않아 최종 손실률이 확정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금융사 관계자는 “금감원이 민간 금융사의 지배구조를 흔들고 CEO 인사에 개입하기 위해 제재심을 서두른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감사원 지적에도 변화 없어
과거에도 금감원의 징계사(史)는 항상 CEO 사퇴로 마무리됐다.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은 우리은행장 재임 당시 투자 손실과 관련해 ‘직무정지’라는 중징계를 받고 2009년 자진 사퇴했다. 2009년엔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 2014년에는 김종준 전 하나은행장, 임영록 전 KB금융 회장 등이 징계를 받고 퇴진했다.
황 전 회장은 불명예 퇴진 후 3년여간의 소송 끝에 대법원에서 제재 취소 판결을 받았다. 당시에도 금감원이 무리하게 징계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박동창 전 KB금융 부사장도 이사회 안건 자료를 유출했다는 이유로 감봉 3개월 처분을 받았다가 소송을 통해 징계취소 결정을 받았다.
올해 DLF 사태와 관련한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에 대한 징계도 과도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은행 CEO에게 책임을 물을 법적 근거가 빈약한데도 무리하게 징계를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을 제재 근거로 내세웠다. 이 법엔 ‘금융회사가 내부 통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은행권에선 ‘내부 통제 기준 마련’이라는 규정을 위반했다고 해서 경영진을 제재할 근거는 이 법에 명시돼 있지 않다고 맞선다.
감사원도 2017년 금감원이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시행령만 갖고 금융사 임직원을 제재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당시 감사원은 금감원에 “금융회사와 임직원에 대한 징계 근거를 명확히 하고 과태료 면제 등에 관해서도 법적 근거를 갖추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도 관련 법규는 마련되지 않고 있다.
소비자보호 조직만 키운 금감원
금감원은 지난 1월 금융소비자보호처(금소처) 조직을 두 배로 확대하고 업권 간 공동조사 기능을 강화하는 내용의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DLF 사태 재발을 막겠다는 취지다. 기존 6개 부서, 26개 팀으로 구성된 금소처 조직은 13개 부서, 40개 팀으로 커졌다. 금융상품 판매와 관련한 사전 감독, 약관 심사, 단계별 모니터링뿐만 아니라 사후 조치까지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담당 부원장보도 한 명 더 늘렸다.
금융사의 속은 타들어간다. 갈수록 부담만 커진다는 하소연이 적지 않다. 은행 고위관계자는 “금감원이 금융회사의 자율적인 영업을 간섭할 권한이 커지는 것”이라며 “과도한 소비자보호 조치가 금융산업 발전을 가로막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지난해엔 4년 만에 종합검사제도를 부활시켰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각 금융사엔 수검준비 부담이 가중됐다. 2015년만 해도 금감원은 검사 방식을 현장진단 검사인 ‘컨설팅식 검사’로 전환하고 경미한 과실은 컨설팅을 통해 조치했다. 실태 진단과 계도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이었다.
감독 권한을 넘어서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불만도 나온다. 이사회 자료나 주요 임원 인사 내용을 ‘미리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일상이 됐다는 전언이다. 금융권에서는 금감원이 강력한 힘을 앞세워 밀어붙이기식으로 민간 금융사 경영에 관여한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규제 완화를 통해 혁신의 토대를 닦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와도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40여 년간 금융권에 몸담았던 한 전직 금융인은 “금감원의 시계만 거꾸로 가는 것 같다”며 “이대로는 금융권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