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가 국제 원자재 시장을 출렁이게 하고 있다. 주요 산업 자재인 구리 아연 니켈 등의 가격이 올해 들어 계속 하락하고 있다. 세계 최대 수요처인 중국에서 조업 중단 사태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 등에 따르면 대표적인 산업 자재인 구리 현물 가격은 t당 5482달러(약 656만5000원)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지난 1월 20일의 t당 6244달러(약 747만8000원)에 비해 약 12.2% 하락했다.
같은 기간 아연의 현물 가격은 무려 21.8%나 빠졌다. 철강재 부식방지 성질을 가진 아연은 자동차 강판이나 강관 등에 주로 사용된다. 스테인리스 철강 합금에 많이 쓰이는 니켈 가격도 마찬가지다. 이 기간 10.3% 하락했다. 이들 원자재 외에도 알루미늄(-9%), 주석(-6.8%), 동(-6.4%), 철광석(-5.7%) 등이 모두 이 기간 가격이 크게 내렸다.
주요 원자재 가격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일제히 오르고 있었다. 1년 넘게 이어지던 미·중 무역분쟁이 조만간 끝이 날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올해로 넘어오면서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터졌고 국제 원자재 시장의 분위기도 급변했다.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 조업이 큰 차질을 겪고 있는 상황이 주요 원자재 가격의 하락세를 부추기고 있다. 이들 원자재 가격이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한 1월 20일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처음으로 공개석상에서 코로나19 사태 해결의 필요성을 촉구한 날이다. 그전까지는 코로나19 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던 시 주석이 직접 나서서 우려를 표하자 원자재 시장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는 지난 1~2월 두 달 동안 대부분 공장이 조업을 멈춘 상황이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1월 말 춘제(중국 설) 연휴를 연장 조치하고 필수재를 제외한 기업과 공장의 가동을 중단했다. 그 결과 중국의 2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사상 최저치인 35.7로 떨어졌다. PMI는 50을 넘으면 경기확대, 50을 밑돌 경우 경기축소를 의미한다. 중국 세관당국인 해관총서는 지난 7일 중국의 올해 1~2월 수출액 합계가 전년 동기 대비 17.2%나 줄어들었다고 발표했다.
외신들은 한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기 시작한 것도 주요 원자재들의 가격을 끌어내린 요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주요 원자재 가격이 코로나19와 관련된 두 개의 큰 이벤트로 하락세가 짙어졌다. 하나는 1월 10일 중국에서 질병으로 인한 최초 사망자가 발생한 것, 또 하나는 2월 21일 한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주요 원자재 가격 하락세가 앞으로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 경기가 한동안 침체를 겪을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원자재 가격이 반등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 구릿값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세계 경기 침체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구릿값은 호황 때 뛰고 불황일 때 하락해 세계 실물경제의 바로미터로 불린다.
미국 보스턴프라이빗 은행의 섀넌 사코치아 애널리스트는 "원자재 시장이 계속 불안정한 상황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라며 "(다른 대부분 자산 가격이 하락하는 와중에) 원자재 가격마저 낙폭을 키우면서 믿을만한 투자처를 찾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