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을 일 없는 요즘 웃게 해주고 싶었고, 울고 싶지만 울 핑계를 대지 못하는 분들에겐 울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최근 에세이집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상상출판)를 펴낸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 권남희 씨(55·사진)는 10일 “책을 통해 괜찮다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잘하는 거라고 토닥거려주고 싶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책을 읽은 독자들의 리뷰를 보니 웃음, 눈물, 위로, 감동이란 말이 들어 있었다”며 “제 마음이 잘 전해진 것 같아 기뻤다”고 덧붙였다.
28년 동안 일본 문학 300여 권을 번역한 권씨의 이름은 일본 소설을 좀 읽었다고 하는 독자들에겐 작가만큼이나 익숙하다.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나쓰메 소세키, 온다 리쿠, 요시다 슈이치, 우타노 쇼고 등 일본 유명 작가 소설의 이름 옆엔 대부분 ‘권남희 번역’이란 문구가 들어가 있다.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는 권씨가 《번역에 살고 죽고》 이후 9년 만에 낸 신작 에세이집이다. 취업준비생 딸과 갱년기에 접어든 권씨의 세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일상 속 에피소드를 담았다. “전작에 번역가로서의 삶과 번역과 관련된 에피소드 및 노하우 등을 담았다면 이번 책에 수록된 에세이들은 가족과 친구, 여행 등을 소재로 쓴 글입니다. 46층에서 본 세상과 55층에서 바라본 세상이 다르듯 9년 전과는 인생을 보는 시선도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이번 에세이집에서도 하루키나 무레 요코, 마스다 미리 등 그가 28년 동안 가장 많이 번역한 작가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풀어내며 번역가의 삶을 되돌아본다. “하루키는 긍정적 사고와 건강한 생활을 하는 ‘쿨’한 어른이에요. 그런 긍정적 사고에 많은 영향을 받았죠. 예순이 넘은 요코는 젊을 때부터 세상의 관념이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주관을 꿋꿋이 관철했죠. 공감이 가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미리는 동네 언니같이 편하게 제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요.”
그는 14년간 네이버 블로그에 꾸준히 짧은 글을 써왔다. 그렇게 쓴 글이 4600여 편이다. 그는 “모두 시시한 낙서 같은 기록이지만 그 덕에 이번 책을 쓸 때 도움이 많이 됐다”고 했다. 책에 수록된 에세이들을 읽다 보면 권씨가 ‘걱정’과 ‘긍정’의 아이콘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의외의 대목에서 걱정하고,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긍정의 힘’을 보여준다. 그는 “사소한 일에는 병적일 정도로 걱정을 많이 하는데, 나쁜 일은 빨리 포기하고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생각하며 ‘행복 회로’를 돌린다”고 말했다.
책 제목에 등장하는 ‘행복’을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권씨는 “행복은 별다른 것 없이 무탈하게 지나가는 소소한 하루 같은 것”이라며 “물질적 충족보다는 별일 없이 사는 하루하루에 만족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조건”이라고 말했다. “딸이랑 행복했던 때를 얘기했는데 둘 다 맛있는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때라고 했어요. 음식과 맥주를 마시며 수다 떨 때가 가장 행복해요. 요즘은 독자들 리뷰를 보는 게 새로 생긴 행복입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