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비상에 걸렸다.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 이후 중국과 정부·민간 협력이 크게 늘어 감염원 접촉도 많았기 때문이다. 여기다 의료 인프라와 의약품 등이 부족하다보니 지역내 감염까지 확 늘어 ‘이란은 중동의 우한’이란 얘기를 듣고 있다.
9일(현지시간) 기준 이란 보건부에 따르면 이란 내 코로나19 확진자는 7161명에 달한다. 중동 일대 코로나19 확진자의 94% 수준이다. 이날까지 코로나19 사망자는 237명이다. 중국(3136명)과 이탈리아(463명) 다음으로 사망자 수가 많다.
이란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 6일을 기해 코로나19가 이란 31개주 모두에 퍼졌다. 의료 서비스 접근성이 높은 고위층도 줄줄이 감염됐다. 아예톨라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의 자문단에 속한 무함마드 미르 모함마디 국정조정위원회 위원은 지난 2일 코로나19로 숨졌다. 현 국회의원, 전 법무부장관, 전 외교대사 등도 연이어 사망했다. 부통령과 스무명 넘는 국회의원은 확진 판정을 받아 치료 중이다.
이란에서 이같이 코로나19가 확 퍼진 것은 중국과 밀접한 관계이기 때문이란게 외신들의 중론이다. 미국의 제재로 서방국가와 거래를 못 하는 이란에게 중국은 제1 교역국이다. 미국 제재 발동 이후에도 암암리에 이란산 원유 등을 대거 수입한다. 이란은 중국산 제품을 수입해 중동 시아파 국가에 되파는 중개 역할을 해왔다. 지난달 19일 이란에서 처음 나온 확진자도 중국과 이란을 오가는 무역업자였다. 중국행 직행 노선이 끊기자 경유 노선을 통해 중국을 수차례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은 각종 인프라 사업에도 중국 자금을 끌어 쓰고 있다. 중국이 중동 내 미국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이란에 지원과 협력을 확대하고 있어서다. 이란 고위급 인사들이 여럿 코로나19에 걸린 것도 이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란은 미국의 제재 이후 무역 등을 중국에 의존했고, 이때문에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퍼지는 동안 자국의 유입을 막기 위한 대처를 빨리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란은 코로나19 확산세를 막기 위해 전례없는 조치를 여럿 내놨다. 9일엔 죄수 7만명을 약 한달간 출소시키기로 했다. 이란 사법부는 매년 이란력 새해 연휴에 모범수를 일시 석방하지만 이번엔 규모와 기간을 기존보다 확 늘렸다. 이전엔 4만~5만여명을 일주일간 출소시켰다. 현지 언론은 교도소 내에서 집단 감염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라고 보고 있다. 당국이 코로나19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당뇨, 천식 등 기저 질환을 앓는 이를 우선 석방한다”고 밝혀서다.
군경을 동원한 단속도 강화했다. 이란 사법부는 마스크와 손소독제 등을 사재기하면 최고 교수형에 처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도시간 이동 금지 조치를 내리고 이를 어길 경우 무력 조치를 쓸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이란 준군사조직인 바시즈 민병대는 의료진과 함께 자국내 모든 가구를 방문해 코로나19 전수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그러나 진짜 관건은 의료 물자라는 지적이다. 이란은 미국 제재로 인해 사실상 외국과 보건용품과 의약품 등을 거래할 수 없다. 이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와 중국 등에서 기부를 통해서만 코로나19 관련 용품을 받고 있다. 중국은 코로나19 검사키트 2만개, 마스크 25만여장을 이란에 주기로 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오스만 다르 글로벌헬스부문 책임자는 미국 CNBC에 “이란은 미국의 제재로 인해 의약품 등이 없어 주변국보다 코로나19 대응 능력이 떨어지는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란은 지난달 일찌감치 마스크 300만 장을 중국에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다른 나라 정부가 조용히 자국 내 마스크를 비축하고 있을 때 이란은 중국에 지원을 했다고 자랑했다”며 “현재 이란 내 마스크 부족 현상을 볼 때 이는 제 발에 총을 쏜 격”이라고 지적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