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결국 진보진영의 ‘비례대표 연합정당’인 정치개혁연합에 합류하는 수순을 밟으면서 개정 선거법 무용론이 나오고 있다. 여야 양대 정당의 독식을 막기 위해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 창당 또는 참여로 무력화될 판이기 때문이다. 정치개혁연합 참여 결정권을 쥐게 된 민주당 당원 사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당 지도부, 당원에 결정 미뤄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9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치개혁연합 참여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전 당원 투표 일정에 대해 “12~13일 이틀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의장은 “(정치개혁연합) 참여 여부를 먼저 결정한 후 참여했을 때 어떤 방식일지를 또 논의해봐야 한다”며 “일단 참여 여부를 투표로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전날 최고위에서 정치개혁연합에 참여할지를 전 당원 대상 모바일 투표로 결정하기로 한 데 이어 이날도 최고위를 열어 투표와 관련한 세부사항을 논의했다. 강훈식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최고위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10일 의원총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한 뒤 다시 최고위에서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고 말했다. 강 수석대변인은 ‘전 당원 투표 여부를 원점 재검토하느냐’는 질문에 “그 의견까지 들어서 최고위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답했다.
주권자전국회의 등 진보진영 시민단체는 지난달 28일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창당에 맞서 민주당 정의당 녹색당 미래당 민중당 민생당 등 범진보 정당에 정치개혁연합 창당을 제안했다. 주권자국민회의 등은 지난 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치개혁연합의 창당준비위원회 결성을 신고했다. 21대 총선을 위한 정당 등록과 비례대표 후보자 선출 절차 등 마감 시한은 오는 16일이다.
野 “선거법 개정 후회한다고 고백하라”
야당은 민주당의 정치개혁연합 참여 움직임에 “이럴 거면 선거법을 왜 개정했느냐”고 비판을 쏟아붓고 있다. 황교안 통합당 대표는 이날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차라리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후회한다고, 지금이라도 정상 선거제로 돌아가자고 고백하라”며 “민주당이 의석수에 눈이 멀어 야합세력 간 밀약마저도 잊어버린 것 같다”고 꼬집었다. 황 대표는 “오직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자신들이 만든 선거법도 내팽개칠 수 있는 정권은 당연히 국민의 선택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당과 함께 선거법 개정에 나섰던 ‘4+1’(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 출신 야당들도 비판에 나서고 있다.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당 상무위원회에서 “정의당은 어떤 경우라도 소위 비례연합 정당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민주당은 최고위에서 비례연합 정당과 관련한 결정을 당원에게 미루겠다고 했는데, 이것이 정의당과 민주당의 확연한 차이”라고 했다.
바른미래당 출신인 김정화 민생당 공동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에서 “스스로의 원칙을 저버리고 정치개혁의 대의를 배신하는 비례 연합정당은 민주당의 무덤이 될 것”이라며 “위헌이자 위법인 반(反)민주 위성정당을 반드시 박멸하겠다”고 밝혔다.
당원들도 의견 분분
민주당 당원 사이에서도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 권리당원 인터넷 게시판에 한 당원은 ‘비례정당 반대-국민들을 믿읍시다’라는 글에서 “당의 저력과 신념이 비례정당 때문에 무너지는 것은 두고 볼 수 없다”고 반대의사를 밝혔다. 반면 또 다른 당원은 ‘비례정당은 숫자게임이다’ 제하 글에서 “시간이 촉박하다. 숫자만 보고 빠르게 판단해서 비례정당으로의 집합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독자 정당 창당을 주장하는 의견도 있었다. 한 당원은 ‘연합정당 반대’ 글에서 “왜 연합정당으로 정의당 녹색당 민중당까지 도와줘야 하느냐”며 “우리끼리 하는 비례민주당이 정답”이라고 주장했다.
전 당원 투표 결과 전망도 엇갈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히는 최재성 민주당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방송에 나와 ‘민주당이 연합정당에 합류하기로 대체적으로 분위기가 모아진 것이냐’는 질문에 “기류는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같은 당 설훈 의원은 “(연합정당 참여로) 중도층 표심이 달아나는 문제가 중요한 판단 포인트”라며 “당원 투표에서 부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도원/김소현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