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배터리 게이트’ 등 잇단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아이폰 생산 차질이 현실화한 가운데 소비자들에게도 거액을 물어주게 됐다.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애플의 ‘중국 올인’ 전략이 기로에 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공급망 타격 현실화
최근 애플의 아이폰 생산 차질이 현실화됐다. 애플의 교체용 아이폰인 리퍼비시(refurbish·재생) 폰 재고가 부족해졌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부품 공급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리퍼비시 폰은 소비자가 고장 난 아이폰을 수리하기 위해 가져가면 바로 고칠 수 없는 경우 제공한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4일 “애플이 기술 지원 직원들에게 리퍼비시 폰 재고가 부족하다고 알렸다”며 “제품 공급은 앞으로 2~4주가량 지연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가 애플의 부품 공급망에 부담을 주고 있음을 보여주는 첫 신호”라고 분석했다. 일부 매장에서는 아이폰 수리를 위한 개별 부품도 모자라는 상황이다. 태블릿PC인 아이패드프로 생산이 차질을 빚고 있고 아이폰11 공급도 부족해지기 시작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이달 말쯤 출시해 4월부터 판매하려던 중저가 신제품 아이폰9(또는 아이폰SE2·가칭)의 생산도 불투명해졌다. 아이폰 대부분이 생산되는 중국 공장의 가동이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생산 인력의 복귀가 늦어지고 있다. 최악의 경우 애플이 신제품 출시를 늦출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중국 올인’ 전략 기로에…
올해 2분기까지 아이폰 생산이 정상화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애플 전문 분석가로 알려진 밍치궈 TF인터내셔널 애널리스트는 “코로나19 여파로 아이폰 카메라 렌즈 재고가 한 달 분량밖에 남지 않아 대량 생산은 5월에야 가능할 것”으로 분석했다. 애플도 최근 상황이 녹록지 않음을 이례적으로 인정했다. “코로나19로 1분기 매출 전망치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발표했다.
애플의 ‘중국 올인’ 전략이 기로에 섰다는 분석도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관세 부담을 비롯한 불확실성과 중국 내 아이폰 판매량 급감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애플에 코로나19는 세 번째 타격”이라고 분석했다.
애플 내부에선 2015년께부터 지나친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베트남 등지로 생산·조립 공정의 일부를 분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매출의 5분의 1을 떠받치고 있는 중국 시장에서 철수하는 데 따른 부담이 경영진의 발목을 잡았다. 숙련 노동자와 부품 공급망 확보 등도 생산 이전 결정에 걸림돌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게이트까지…
애플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구형 아이폰 이용자에게 최대 5억달러(약 5920억원)를 물어주기로 최근 합의했다. 배터리 게이트로 불리는 이번 사건은 2017년 소비자들이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구형 아이폰 이용자들은 운영체제(iOS)를 업데이트한 뒤 속도가 느려지고 배터리 성능이 저하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애플은 “배터리 성능을 낮춘 것은 맞지만 구형 아이폰이 갑자기 다운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합의안에 따라 애플은 아이폰 이용자 한 명당 25달러(약 3만원)를 지급해야 한다. 아이폰6·6플러스·6s·6s플러스·7·7플러스·SE 이용자가 지급 대상이다. 국내에서도 2018년 법무법인 한누리가 아이폰 사용자 6만4000여 명을 대리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애플 본사와 애플코리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오는 12일 재판이 열린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