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언어 테러'도 범죄다

입력 2020-03-08 18:49
수정 2020-03-09 00:20
불가(佛家)에서 널리 읽히고 자주 독송되는 주요 경전 가운데 하나가 천수경이다. 그 시작이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곧 입으로 지은 업(죄)을 깨끗이 하는 참된 말(진언)이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라는 산스크리트어 진언이 세 번 반복된다. ‘깨끗하도다, 깨끗하도다, 아주 깨끗하도다. (모든 게) 원만히 성취되리라’라는 의미다.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게 불경뿐인가. 동서고금 지혜 서적들과 현인들 가르침, 생활에서 우러나온 격언과 속담에도 흔하다. 그만큼 언어는 무섭고, 내뱉은 말은 되돌릴 수가 없다.

언어와 표현의 자유가 기본권이 되고, 의사표시의 권리도 극대화되어 갈수록 말과 언어도 한층 중요해진다. 하지만 신장된 자유만큼 자기책임 의식은 부족한 게 현실이다. 인터넷에 넘치는 거친 언어나 준사회적 공간인 SNS에서의 감정 과잉분출은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현대의 병리적 특성이라고 해버리기엔 한국 사회의 정도가 심하다.

‘공공성’ ‘공익’이 좀 더 강조되는 쪽에서 마구잡이로 나오는 말이 더 걱정이다. 거칠고, 조악한 언어가 때로는 칼날처럼 횡행한다. 정치권과 그 주변의 ‘정치꾼’이 진원지일 때가 많다. 이것도 ‘정치과잉’이라는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이다. 여권에서 부적절한 언어로 마치 ‘누가 더 나쁜가’ 경쟁을 하듯 하더니, 며칠을 못 참고 또 설화 수준의 말을 내놓는다. “코로나 사태는 대구사태이자 신천지사태”(방송진행자 김어준) “대구는 미래통합당 지역이니 손절해도 된다”(더불어민주당 청년 당직자)는 막말이 그렇다. 국가적 위기에 이런 엉터리 ‘정치계산서’가 청년 정치지망생에게서 나왔다는 게 더 안타깝다. 앞서 유시민·공지영·박능후·홍익표 제씨가 말로 ‘사회적 매’를 번 게 얼마나 됐나. 법적·제도적 권한이 많고, 국정운영 책무도 더 큰 여당 쪽에 더 엄한 잣대를 댈 수밖에 없다.

‘정치의 9할이 말’이라고 했다. 정치의 영역에서 언어는 그만큼 중요하다. 결국 부적절하고 섣부른 말로 주목을 끌려는 이른바 ‘관종’그룹은 ‘하류 정치꾼’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자칭 논평가든, 작가든 마찬가지다. ‘정신적 테러’ 같은 말은 범죄적 행위다. 공인이라면 명예훼손죄 정도를 넘어서는 잣대를 댈 필요가 있다. 달리 제재수단이 없다면 선거 때 그들이 속한 그룹과 진영에 불이익을 주는 것도 방법이 되지 않을까.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