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가경정예산으로 아동수당 수급자들에게 1조원의 현금쿠폰을 지원하기로 한 가운데, 마스크 수급 안정화에 투입하는 예산은 약 900억원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마스크 제조업체에 대한 지원은 70억원에 불과하고, 정부로부터 ‘납품가 후려치기’를 당했다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어 “마스크 생산 확대 의지가 있긴 한 거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가 마스크 수급 안정화를 위해 책정한 예산은 생산 지원 70억여원, 의료기관·저소득층 등을 위한 무상 배급 지원 845억원 등 920억원 수준이다.
생산 지원 예산은 마스크 설비의 생산성 향상에 42억원, 마스크 핵심 원자재 멜트브라운(MB) 필터 설비 투자에 28억원 등이다. 제조업체들이 인력난에 시달리는 점을 감안한 고용보조금 사업도 있긴 하다. 새로 일자리를 늘린 업체에 근로자 1인당 월 80만원을 지원한다. 하지만 1000명분을 지급해도 지원 예산은 8억원에 불과하다.
투자가 적으니 생산량이 많이 늘어날 수 없다. 정부가 생산 지원을 통해 달성하겠다는 마스크 하루 생산량 목표는 1400만 장. 지난달 12일 이후 하루 평균 생산량이 1163만 장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생산 증가량은 200만 장 정도에 그친다. 1400만 장으로 늘어도 전체 인구(5171만 명)가 쓰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가 이날부터 마스크 공적 판매 비중을 80%로 늘리기로 하면서 제조업체들은 조달청과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납품가 후려치기로 업계의 생산 의욕을 깎아내리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치과용 마스크 제조업체 이덴트는 지난 5일 “정부가 납품 계약 과정에서 생산 원가의 50%만 인정해주겠다고 통보했다”며 “손실을 감수하면서 제조할 수 없어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마스크 제조업체의 한 관계자는 “소규모 업체는 원자재 조달 비용이 많이 들고 설비 효율이 낮아 생산 원가가 높은데, 규모가 큰 회사와 같은 수준의 납품가를 요구하니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정부는 민간 판매처에 대해서도 마스크 가격이 급등하면 ‘가격 상한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아무리 비상 상황이라도 정부의 가격 통제가 심하면 여러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가 꾸준히 요청하고 있는 ‘마스크 공공 비축제 도입’이 이뤄지고 있지 않는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마스크 제조업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지면 마스크 수요가 급감할까봐 설비증설·증산을 망설이고 있다. 정부가 쌀처럼 마스크를 평상시에 비축해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수요를 일정 수준 유지해주면 생산 확대가 원활해질 거라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하지만 정부는 “검토하겠다”고만 하고 도입을 결정하지 않고 있다.
마스크 수요자 측 지원도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3~4월 의료기관·저소득층·학교와 대구·경북 등은 무상으로 마스크를 지원하겠다며 이를 위해 예산 845억원을 책정했다. 마스크 개수로 환산하면 하루 200만 장 수준이다. 노인과 기저질환자 등 마스크가 긴요한 사람들은 지원 대상에서 빠져 있어 ‘1인당 1주 2장’ 이내로 직접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가구까지 아동수당 명목으로 1조원 이상 예산을 퍼부어주면서 정작 지원이 절실한 분야엔 돈을 아끼니 일의 선후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