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萬花方暢(만화방창·만물이 봄기운을 받아 힘차게 자라남)…화가들이 부르는 희망가

입력 2020-03-08 16:59
수정 2020-03-09 00:29
1976년 봄 경북 경주에서 출발한 서울행 기차가 잠시 대구역에 정차했다. “와, 여기가 대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한껏 들뜬 수학여행에서 본 대구역이 나와 대구의 첫 인연이었다.

이상화, 현진건, 박목월, 김춘수 등을 낳은 민족 문학의 융성지로도 유명하지만 대구는 미술의 도시다. 대한민국의 화가치고 대구 미술에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다. 구상미술의 고향이기에 화가를 꿈꾸는 자라면 누구나 수련기에는 대구식 화법이 교과서처럼 통용됐다. 6·25전쟁 때 아쉽게 요절한 천재 이인성을 비롯해 소묘력이 대단했던 이쾌대와 손일봉, 변종하 등이 대표적이다. 구상미술뿐만이 아니다. 곽인식, 곽훈, 이강소, 이배 같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추상화가도 있다.

전남 진도를 기점으로 호남에선 동양화, 대구를 중심으로 영남에선 서양화가 주류로 득세했다. 대구인들의 서양화 사랑은 대단해서 웬만한 집이나 식당, 관공서엔 당연히 잘 그린 유화가 몇 점씩 걸려 있다. 대구에서 화업을 시작한 김일해, 이원희, 장리규, 김창영, 이수동, 이정웅, 도성욱, 두민, 윤병락 등 중견작가들은 지금껏 한국미술의 굳건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화랑들이 밀집한 봉산동 문화의 거리 근처에 있는 도로메기(도루묵의 사투리) 대폿집은 대구 화가들의 아지트였다. 잔술로 파는 막걸리를 놋쇠 잔에 그득 부어 마시며 인생과 예술을 논했다. 나도 가끔 대구에 내려가면 그곳 화가들과 함께 도로메기 집에서 가마솥 뚜껑에 노릇하게 지진 도루묵과 고춧가루 듬뿍 넣어 칼칼하게 무친 콩나물 안주에 거나하게 막걸리를 들이켜곤 했다.

한국미술의 성지 같은 대구가 요즘 심하게 앓고 있다. 바이러스 때문이다. 그 지독한 6·25전쟁도 버텨냈던 도시가 쉽지 않은 위기를 맞았다. 대구 미술계의 정감 넘쳤던 낭만도 한동안 볼 수 없을 것 같다. 대구뿐만 아니라 서울 화랑가도 OK목장의 결투가 벌어지는 황량한 서부 개척시대의 마을 마냥 을씨년스럽다. 어쩔 수 없이 열게 된 전시회는 참담하리만큼 관람객이 드물다. 우연히 들른 지인의 전시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무슨 위로를 건넬 수 있을까. 하지만 그는 어쩌면 이번 생의 마지막 개인전이 될지도 모르는 안타까운 지경에서도 오히려 나라 걱정을 먼저하고 딱한 사람들이 많다며 뭔가 돕지 못하는 자신을 한탄했다.

온통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뉴스 가운데 캄캄한 밤하늘의 왕별처럼 반짝이는 소식들이 있다. 자신을 희생해 봉사하는 살신성인에 관한 얘기들, 의료진과 119 구급대원들의 헌신적인 얘기들이다. 땀에 범벅이 된 채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도 꺼져가는 생명의 기운을 살리려 사투를 벌이는 그들은 빛나는 별이요, 아름다운 꽃이며,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다. 그들의 외침이야말로 세상을 구하려는 희망가다. 지금 이 땅의 많은 화가들도 그런 영웅들의 외침에 호응하고 있다. 자신의 분신 같은 작품을 내놓고 구호 행렬에 동참하기로 한 것이다. 그 수가 늘어나 꽤 큰 규모의 자선 경매가 이뤄질 정도가 됐단다. 화가들도 희망가를 부르는 합창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영웅적인 의료진의 사투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온정어린 격려와 배려, 기부가 대구와 경북으로 쇄도하고 있다. 그래서 봄은 곧 오리라는 강한 믿음을 갖게 한다. 만화방창(萬化方暢)! 봄이 돼 만물이 힘껏 솟아나고 다시 생기가 돋을 것이다. 대구와 서울의 화랑가, 전국의 상가와 거리가 다시 활기찬 시민들로 북적이는 날을 위해 모두가 희망가를 부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