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먼저 침범할 것인가
인도 만디아 지역에서 리튬 광산이 발견됐다. 규모는 최소 1만4,100t 수준에 불과하지만 이번 발견으로 인도는 칠레(860만t), 호주(280만t), 아르헨티나(170만t), 포르투갈(6만t) 등과 같은 리튬 원자재 공급 국가로 등극했다. 게다가 원자재가 확보됐으니 향후 10년 동안 리튬 배터리 생산을 위해 10개의 대형 공장을 설립하겠다는 목표도 설정했다.
그런가 하면 미국 디트로이트에선 GM이 내년 말 전기 픽업트럭 생산을 목표로 전용 공장 설립을 발표했다. GM에게는 최초의 전기차 전용 공장이다. 그리고 메리 바라 GM 회장은 화끈하게 2025년까지 20조원 이상을 투자해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에 모든 역량을 쏟겠다고 선언했다. 한 마디로 내연기관 완성차에서 전기 자율주행차 제조사로 탈바꿈하겠다는 미래 전략이다.
GM의 투자는 공장에서 멈추지 않는다. 배터리에 들어가는 셀의 적재 구조를 바꾸고 '얼티멈(Ultimum)'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50~200㎾h에 걸친 다양한 용량의 배터리에 브랜드를 입히고 자동차에 탑재할 계획이다. 0-100㎞ 가속을 3초 이내로 설정해도 최장 644㎞의 주행이 가능한 제원이라고 설명했다. 승용은 400V 배터리팩과 최대 200㎾급 고속 충전이 가능하고, 트럭은 800V 배터리팩에 350㎾급 고용량 충전이 활용된다. 물론 파트너는 한국의 LG화학이다.
또 다른 지역인 중국에선 테슬라가 배터리 가격을 낮추기 위해 파트너 기업인 파나소닉 대신 중국 내 CATL사와 손잡았다. 이 회사가 만든 리튬인산철 배터리에는 값비싼 코발트가 들어가지 않아 가격을 낮출 수 있어서다. 중국 내 전기차 보조금 지급이 2021년까지 연장되는 방안이 검토되지만 이미 중국 완성차기업들이 저렴한 전기차를 쏟아내는 마당에 테슬라 또한 가격을 낮추지 못하면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성능은 코발트가 들어간 리튬 배터리 수준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는 밀도가 10% 가량 낮아 주행거리에서 불리하기 때문이다. 결국 GM과 마찬가지로 핵심 배터리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본 셈이다.
유럽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만든 유럽배터리연합(EBA, Europe Battery Association)은 유럽 내 BMW, 바스프 등 배터리 제조사 17개사를 묶어 4조원 규모를 지원하기로 했다. 배터리 생산의 80%가 아시아 지역에서 생산된다는 점에서 자체 배터리의 제조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미래 전동 모빌리티 시장에서 뒤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만든 결과다. 여기서 만들어진 배터리를 유럽 내 여러 완성차 기업이 활용, 유럽의 모빌리티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계획이다. 동시에 폭스바겐은 이미 'I.D.'로 이름 붙인 전기차 제품군의 연간 30만대 생산에 돌입했다.
흥미로운 점은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사가 전기동력 이동 수단의 제조와 핵심 부품 개발에 나서는 동시에 인프라 구축에도 관심을 쏟는다는 점이다. 이미 배터리 직접 개발 및 제조에 나선 토요타는 급속 충전 프로토콜 개발에 적극적이다. 내연기관에 비유하면 주유소에 설치된 주유기를 만드는 일이다. 어떻게 전기를 충전하느냐에 따라 배터리 수명이 달라진다는 점에 착안, 충전을 인공지능이 한다. 이용자가 충전 커넥터를 연결하면 인공지능이 배터리 상태를 촘촘히 파악해 수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며 충전하는 기술이다. 동시에 일본 산요는 2021년부터 내화성 플라스틱 배터리의 양산을 준비 중이다. 배터리의 주요 구성 요소를 가벼운 플라스틱으로 바꾸면 금속 리튬이온 배터리 대비 생산 비용이 절반 가량 낮아진다는 점을 주목했다. 한 마디로 전기 모빌리티 혁명에 앞다퉈 모두가 뛰어드는 형국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기아차는 플랜S를 발표하면서 전동화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했다. 현대차 또한 LG화학 및 삼성 SDI, SK이노베이션 등 탄탄한 국내 배터리 제조사를 기반 삼아 그룹 자체를 스마트 모빌리티 회사로 바꾸겠다는 전략을 실행 중이다. 더불어 수소로 전기를 만들어 동력원으로 삼는 수소 에너지 혁신에도 매진한다. 여기에는 아예 전기 생산에 수소를 활용하는 발전 부문도 포함돼 있다. 한 마디로 직접 전기를 만들어 현대기아차가 만든 전기차 배터리에 공급하고, 신재생에너지로 수소를 만들어 수소 전기차에 보급하는 식이다. 움직이는 것에는 반드시 동력이 필요한 만큼 동력의 직접 제조에서 활용까지 모든 부문을 망라한다.
물론 글로벌 기업 및 국가들의 전동화 걸음은 빠르지만 보폭은 아직 크지 않다. 그러나 최근 흐름을 보면 보폭이 점차 넓어지고 발의 움직임은 잰걸음 수준으로 바빠지고 있다. 실제 글로벌 EV 업계 내에선 관련 부품 시장 또한 5년 후가 지나면 170조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당연히 배터리 팩과 모터 부문의 비중이 크지만 내연기관의 전동화가 가져올 변화의 충격은 상당하다는 방증이다.
내연기관 150년 역사에 비춰볼 때 지금까지 '이동(Mobility)'에 필요한 모든 영역은 세부적으로 구분돼왔다. 자동차회사는 이동 수단 제조에 집중했고, 정부와 운송사업자는 대중교통 체계를 구축해 왔다. 이때 필요한 에너지는 정유사가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자동차회사가 전기를 만들고, 정유사는 전기 이동 수단 제조에 뛰어들며, 전기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인프라 사업에는 모두가 군침을 흘리고 있다. 이른바 전기차가 가져올 영역 파괴의 시작이다. 따라서 전기차 분야에 있어 업종의 영역 다툼은 이제 무의미하다. 서로 겹칠 수밖에 없는 영역 경쟁에서 누가 먼저 침범하느냐만 있을 뿐이다.
권용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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