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 커피는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 발길이 닿기 힘든 지역에서 나온 커피를 세계인의 음료로 만든 역할을 했다. 1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들의 ‘필수품’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해 199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이후 아메리카노와 스페셜티 커피에 밀렸다. 인스턴트는 ‘싸구려 커피’라는 인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요즘 커피업계는 다시 인스턴트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국내외 커피 업체들은 “잘 만든 인스턴트 커피가 웬만한 아마추어가 내린 스페셜티 커피보다 낫다”며 제품라인을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연 5% 성장
미국 스페셜티 커피업계의 화두는 ‘인스턴트 크래프트’다. 대량생산형 가공 방식을 따르지만 커피 원두나 로스팅 방식은 전문 로스터와 전문가가 결정한다.
스타벅스가 가장 먼저 치고 나왔다. 2009년 인스턴트 커피에 소량의 초미세입자 커피를 넣어 향을 끌어올린 비아(VIA·사진)를 내놓았다. 현재 부알라, 서든커피, 스위프트컵커피의 조, 블루보틀 등이 모두 프리미엄 인스턴트 커피를 판다.
샌프란시스코 기반의 스페셜티 커피 전문 로스터가 만든 ‘버브 커피’의 인스턴트 커피에는 패키지에 생산자, 국가명과 생산지, 고도와 수확 일자까지 적혀 있다. 그 위에 ‘이것은 할머니가 마시던 인스턴트가 아니다. 소규모 수제 방식의 엄선된 커피가 들어 있다’고 써 있다.
네슬레와 JAB홀딩컴퍼니는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인수를 통해 인스턴트 커피 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네슬레는 스타벅스의 브랜드 라이선스와 블루보틀 지분을 사들였다. JAB는 인텔리젠시아, 스텀프타운, 피츠커피, 프레타망제, 큐리그 등에 투자했다.
스페셜티 커피 업체가 생산하는 인스턴트 커피는 가격도 비싸다. 6~7회 정도에 나눠 먹을 수 있는 패키지가 16~17달러. 2만원 안팎으로, 한 잔 가격이 3000원을 넘는다. 원재료 가격이 높을 뿐 아니라 동결 건조와 초미세 분쇄 기술, 향미 보존 기법 등이 모두 적용됐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고품질 제품 쏟아질 듯
국내에선 커피믹스의 원조사인 동서식품이 인스턴트 커피 시장을 사실상 독점해왔다. 업계 관계자는 “인스턴트 커피는 자본과 기술의 경쟁”이라며 “동서는 다른 기업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평가했다.
‘커피믹스’에 익숙한 소비자를 겨냥해 다른 국내 업체들도 제품력 강화에 나섰다. 이디야커피는 올해 기존 비니스트 스틱커피를 자체 생산하기 위해 경기 평택에 첨단 제조 공장을 짓고 있다. 파스쿠찌는 드립백과 스틱커피 중 스틱커피 판매량이 눈에 띄게 증가하자, 고품질 스틱커피 개발에 들어갔다. 프?츠커피컴퍼니와 카페뎀셀브즈 등 브랜드는 드립백보다 더 간편한 형태의 티백 커피를 판매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모조인텔리전스는 인스턴트 커피 시장이 2024년까지 연평균 5%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인스턴트 커피는 세계 커피 시장의 20%를 넘는다. 국내 시장에서는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