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국회가 자초한 게리맨더링 논란

입력 2020-03-04 17:14
수정 2020-03-05 00:26
“20대 국회에서 다섯 곳을 합치는 데도 간신히 합의했는데 이번엔 여섯 곳을 묶었습니다.”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4일 4·15 총선 선거구획정안과 관련해 민주당 미래통합당 민생당 등 여야 3당 원내대표 공동회견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전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선거구획정안에 강원 속초·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 지역구가 신설된 데 대한 지적이었다. 3당 원내대표는 선거구획정안에 대해 ‘게리맨더링(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자의적으로 변경하는 일)’ 논란이 일자 이날 부리나케 수정 합의안을 마련해 선거구획정위에 재의를 요구했다.

애초 획정안은 지역구 253개 중 4개를 분구하고 4개를 통폐합하는 내용을 담았다. 강원은 5개 지역구를 4개로 통합·조정하면서 홍천·철원·화천·양구·인제에서 홍천을 떼내고 속초와 고성을 붙여 속초·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 지역구를 만들었다.

현행 지역구는 2016년 20대 국회에서 기존 철원·화천·양구·인제에 홍천이 합쳐졌다. 당시 강원도의회와 지역구 의원 등은 “국회의원 한 명이 어떻게 5개 군 현안을 챙기느냐” “서울 면적의 7배이던 지역구가 작아지기는커녕 오히려 10배가 됐다”고 반발했다. 그런데도 선거구획정위는 이번에 6개 시·군을 합친 안을 내놨다. 전날 문희상 국회의장은 획정안에 대해 “6개 시·군을 묶는 것은 법률에 배치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강원 외 다른 조정 선거구에서도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이 나왔다. 서울 노원을을 지역구로 둔 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강남이 노원보다 590명 더 적은데 획정위는 강남 선거구를 줄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획정안에서 노원구는 기존 갑·을·병 3개에서 갑·을 2개로 통합됐다. 김명연 통합당 의원(경기 안산 단원갑)은 안산 상록갑·을, 단원갑·을 4개 지역구가 안산 갑·을·병 3개 지역구로 통폐합된 데 대해 “오로지 호남 의석과 특정 정치인의 지역구를 지켜주기 위해 안산시민을 희생시켰다”고 반발했다. 논란이 거세자 여야 3당 원내대표는 이날 회동에서 세종과 경기 군포 외에 다른 지역구는 분구 및 통폐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게리맨더링 논란은 정치권이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거구획정안의 국회 제출 법정 시한은 선거일 13개월 전인 지난해 3월 15일이었다. 여야가 법정 시한을 넘긴 지 1년이 다 되도록 정쟁으로 선거구획정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하자 선거구획정위가 총선을 한 달여 앞두고 부랴부랴 지난 3일 획정안을 제시했다. 그만큼 선거구 획정에 충분한 검토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선거구획정위는 여야가 획정 기준을 합의하지 못함에 따라 지난달 28일부터 자체 안을 마련했고 나흘 만에 독자 안을 확정했다. 김세환 선거구획정위원장은 3일 획정안을 발표하면서 “지역 대표성을 반영하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 선거구가 있다”고 했다.

김진태 통합당 의원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선거구 획정 법정 시한을 넘긴 게 1년이 다 돼가는데도 지지부진하다”며 “나도 의원이지만 국회의 직무유기가 정말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다른 국회의원들도 이 말을 곱씹어봐야 할 듯싶다.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