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 일대 152개 정비구역 무더기 해제

입력 2020-03-04 17:06
수정 2020-03-05 13:22

서울시가 종로구 세운상가 일대 152개 정비구역 지정을 해제하고 도심 제조산업의 허브로 육성한다. 지난해 논란이 됐던 을지면옥은 철거 될 전망이다. 세운상가 일대를 둘러싼 서울시 정책이 여러 차례 오락가락하면서 이곳에서 재생사업을 진행 중인 시행사나 원주민들이 큰 피해를 보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운상가 주변 정비구역 무더기 해제

서울시는 세운상가 일대의 미래 관리 방향을 보전·재생으로 전환해 도심 제조산업의 허브로 하는 내용의 ‘세운상가 일대 도심산업 보전 및 활성화 대책’을 4일 발표했다.

전체 171개 정비구역 중 아직 사업을 추진하지 않은 152개 구역을 관련법에 따라 정비구역에서 해제하고, 주민협의를 통한 재생 방식의 관리로 전환할 계획이다. 세운2구역 35개소와 세운3구역 2개소, 세운5구역 9개소, 세운6-1·2·3·4구역 106개소 등이 대상이다. 최종 해제는 서울시 도시재정비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 서울시는 화장실, 소방시설 같은 열악한 기초 인프라를 보강하고 주차장 확충, 도로·보행환경 개선 등을 지원한다. 또 건축규제 완화, 건축협정 등의 방법으로 개별 건축행위를 유도해 시설개선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정비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세운지구 11개 구역과 공구상가가 밀집한 인근 수표 정비구역은 산업생태계 보호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 지역은 세입자 이주대책을 마련한 후 정비사업에 들어간다. 관리처분을 앞둔 세운3구역(3-6·7)은 세입자에게 사업시행자가 확보한 임시 영업장을 제공한다.

을지3구역 내 ‘을지면옥’은 철거될 전망이다. 서울시가 노포 보존을 위해 새로 마련한 정비계획을 정작 을지면옥이 “낡은 건물에서 장사하기는 어렵다”고 거부했다. 서울시가 소유주도 원하지 않는 노포 보존을 주장하는 바람에 사업 기간이 1년3개월간 지연되면서 금융비용 등 추가비용만 1500억원 발생했다고 정비업계는 지적했다.

서울시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2021년 세운5-2구역에 공동조성하는 지식산업센터(약 100실)에 입주시킬 계획이다. 사업시행인가가 신청된 세운5-1·3구역은 사업시행자가 사업 부지와 건축물을 기부채납하도록 했다. 수표구역은 기부채납 부지에 공공임대상가를 조성해 세입자들을 입주시킬 계획이다. 공공임대상가 입주를 원하지 않는 사업체는 빈 상가 알선 등 공공중개서비스를 지원한다.

서울시는 4월까지 일몰 관련 행정절차를 완료하고 10월 중 세운재정비촉진계획 변경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세운상가 일대 도시재생활성화계획’도 연내 수립한다.

8개 산업거점 조성

산업거점 공간은 8곳에 새롭게 조성한다. 기계·정밀, 산업용재, 인쇄 등 구역별 산업입지 특성을 반영한 공공임대복합시설, 스마트앵커시설 등이 들어선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간의 상당 부분은 정비사업 이주 소상공인들이 영업 기반을 확보하도록 주변 임차료 시세보다 저렴한 공공임대상가(700실 이상)로 조성한다”며 “나머지는 청년창업지원시설 등 신산업 육성 공간으로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소상공인 등 기존 산업생태계를 보호하면서 청년들과 신산업 유입을 통해 새로운 고부가가치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박원순 시장은 “기존 계획은 지역 산업생태계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에 대한 조사·분석이 미흡한 물리적 변화 중심이었다”며 “공공성이 강화된 정비사업을 유도하고 도심 산업생태계 보전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보강했다”고 말했다.

오락가락 서울시 정책

세운지구 일대 개발 계획이 이처럼 완전히 바뀐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 수립된 당초안은 세운상가군을 철거하고 주변 8개 구역을 대규모 통합개발하는 내용이었다. 박 시장이 들어선 뒤 이를 171개 중소 규모 구역으로 쪼개 분할 개발하는 식으로 내용이 달라졌다. 건축사적·지역적 가치가 있는 세운상가군은 존치·재생하고 낙후된 주변지역은 기존 도시 조직을 고려한 점진적 개발을 유도하기 위한 취지였다. 그러나 서울시는 지난해 1월 세운지구 정비사업 재검토에 들어갔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존 계획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지역이 지닌 역사적 특성과 미래 잠재력을 고려해 보강했다”고 말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개발계획이 바뀌면서 원주민뿐 아니라 투자자, 시행사 등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며 “도심 주거시설 공급 물량이 더욱 줄어들면서 집값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이유정/배정철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