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0대 그룹 가운데 여섯 곳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올해 사업계획을 전면 수정할 계획인 것으로 조사됐다. 열 곳 중 아홉 곳은 올해 실적 목표치를 낮추겠다고 답했다.
한국경제신문이 3일 국내 10대 그룹(자산 기준) 전략·기획 담당 최고 임원을 대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경영환경 변화’에 대해 긴급 설문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현대자동차와 SK 등 6개 그룹이 ‘코로나19 충격 탓에 올해 사업계획을 수정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삼성과 한화 현대중공업 신세계 등 네 곳은 ‘상황을 지켜본 뒤 결정하겠다’고 했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목표 하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9개 그룹이 올해 매출과 이익 목표치를 ‘수정 1순위’로 꼽았다. 실적 다음으로 채용 계획을 줄여야 한다고 응답한 곳이 일곱 곳이었다. 7개 그룹은 실적과 채용 계획 다음으로 투자 계획과 중장기 전략을 조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10개 그룹 중 SK그룹만 채용이나 투자 계획보다 중장기 전략을 우선 재검토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이메일을 통해 “사태 장기화에 대비하고 있다”며 “다양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수립해 당면한 위기 극복은 물론 이후에도 조기에 경영 안정을 이룰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4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경북 구미사업장을 찾아 “모두 힘을 내 초유의 위기를 이겨내자”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기업들, 실적목표 낮추고 채용 축소…정의선 "컨틴전시 플랜 수립"
10대그룹 긴급 설문…"코로나로 올 사업계획 전면 수정"
현대자동차그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마련한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피해가 예상보다 클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다른 대기업들도 ‘초비상’이다. 일부 기업은 비상상황실을 설치하고 실시간으로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올해 사업계획과 중장기 전략을 백지 상태에서 재검토하겠다는 곳도 늘어나는 추세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내수부진, 미·중 무역분쟁 등 악재 속에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예상 밖 변수까지 더해진 탓이다. 10대 그룹 계열사의 한 고위임원은 “올해 최대 목표는 생존”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경북 구미 스마트폰 생산공장을 찾고,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임직원에게 ‘위기 극복’을 강조하는 이메일을 보낸 이유다.
“중국 사업 줄이는 방안 검토”
한국경제신문이 이날 10대 그룹(자산 기준)을 대상으로 한 긴급 설문조사 결과 절반 이상이 올해 사업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방향은 ‘축소’였다. 응답 기업의 절반이 ‘내실 강화 체제로 사업전략을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10대 그룹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생산 차질과 판매 부진으로 올해 매출 및 영업이익 목표를 달성하는 건 이미 물 건너갔다”며 “공격적인 투자를 자제하는 방향으로 사업전략을 수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LG그룹은 사업전략 전면 재검토를 준비하고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달 13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코로나19 경제계 대응’ 간담회에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안정적 부품 조달 공급망 구축을 위해 생산전략을 재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그룹도 사업계획을 바꾸고 투자 규모를 줄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중국 시안에 건설 중인 반도체2공장 완공 시기와 가동 시점도 늦춰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스마트폰 출시행사 등도 줄줄이 연기될 전망이다.
지난달 국내 생산실적이 반토막 난 현대차그룹도 사업계획을 뜯어고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신차 출시 일정을 재조정해야 하는지 고민 중이다. 채용을 미루거나 규모를 줄이는 기업도 많다. SK그룹을 비롯한 다수 기업은 채용 일정을 연기했다. 효성은 올해 처음으로 상반기 공개채용을 하려다 보류했다.
경제계 일각에서는 국내 주요 기업이 중국 사업 전략을 대폭 수정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중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보니 중국발(發) 리스크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 대기업 대표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중국 사업 비중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위기 극복 강조한 이재용·정의선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기업들은 내부 결속 다지기에 들어갔다. 이재용 부회장은 확진자가 4명 나온 구미사업장에서 스마트폰 생산라인을 점검하고 직원들과 차담회를 열었다. 이 부회장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일선 생산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고 계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여러분의 헌신이 있어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고 말했다. 이어 “모두 힘을 내 함께 이 위기를 이겨내 조만간 마스크를 벗고 활짝 웃으며 만나자”고 독려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임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모든 가용 자원을 동원해 임직원의 건강과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 종합상황실을 그룹 및 각 계열사에 설치해 실시간으로 국내 및 해외 상황을 점검하고 사업 리스크(위험)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며 “다양한 비상계획을 수립해 위기를 극복하고 조기 경영 안정을 이룰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영난을 겪는 협력사도 다독였다. 정 수석부회장은 협력사 대표들에게 공문을 보내 “협력사에 힘이 될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최대한 지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인설/도병욱/황정수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