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훈 농협은행장이 새 임기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중도 사임했다. 이 행장을 비롯한 범(汎)농협 주요 경영진 7명도 한꺼번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농협중앙회장이 바뀔 때마다 농협은 어김없이 ‘물갈이 인사’를 해왔다. 이번 교체도 이성희 신임 농협중앙회장 취임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당분간 직무대행 체제 유지
이 행장을 비롯한 범농협 경영진 7명은 3일 일제히 사임했다. 허식 농협중앙회 부회장, 소성모 농협상호금융 대표, 김원석 농업경제 대표, 박규희 농협중앙회 조합감사위원장, 이상욱 농민신문사 사장, 김위상 농협대 총장 등이다. 7명 중 이 행장을 제외한 6명은 모두 농협중앙회 소속이다.
농협 안팎에선 예견된 일이라는 반응이다. 지난 1월 말 농협중앙회장이 새로 뽑힌 직후부터 “조만간 경영진이 대거 바뀔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동안 농협중앙회장이 바뀔 때마다 ‘새 회장의 색깔에 맞는’ 경영진으로 대폭 물갈이됐기 때문이다. 2013년에도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이 취임한 직후 4명의 경영진이 교체됐다.
이번에도 7년 전 전개와 비슷했다. 경영진 사이에서는 자발적으로 사표를 내야 한다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조성됐다. 지난 2일 경영진 9명이 사표를 제출했고, 이 중 홍재은 농협생명 사장과 최창수 농협손해보험 사장을 제외한 7명의 사표가 수리됐다.
이 행장의 중도 사임은 그 여파가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행장은 역대 농협은행장 중 처음으로 ‘3연임’에 성공했다. 2017년 12월 1년 임기로 취임한 이 행장은 한 차례 연임(1년 임기)한 뒤 올해 다시 임기를 연장했다. 이 행장의 연임은 경영 성과를 인정받은 데 따른 ‘포상’으로 여겨졌다. 농협은행은 2018년 처음 1조원이 넘는 순이익(1조2226억원)을 거둔 데 이어 2019년에도 1조5171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이 행장은 3연임 후에도 디지털 전환과 글로벌 확장 전략을 진두지휘하는 등 경영에 대한 의지가 컸다”며 “당초 세운 경영계획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떠나 아쉬움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부터 이 행장의 업무는 장승현 수석부행장이 대행한다.
신경분리 8년 됐지만…
이번 경영진 교체를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농협 내부의 분위기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농협금융 계열사의 경영전략이나 인사 주도권은 농협금융에서 쥐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농협중앙회장이 바뀌었다고 행장까지 교체하는 게 당연한 일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농협금융은 2012년 농협중앙회가 신용부문과 경제부문을 분리하면서 신용부문을 총괄하는 조직으로 출범했다. 농협금융은 농협은행, 농협생명, 농협손해보험, NH투자증권, 농협캐피탈, NH저축은행, 농협리츠운용, NH아문디자산운용 등 9개 자회사를 두고 있다.
사업 부문은 분리됐지만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에 미치는 영향력은 여전히 크다. 농협중앙회는 농협금융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농협금융은 매년 벌어들이는 순이익의 20%가량을 농업지원 사업비란 명목으로 농협중앙회에 낸다.
농협금융 이사회는 4일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차기 은행장을 선임하는 절차를 논의할 계획이다. 이달 후보 추천 및 선임을 완료할 것으로 전해졌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