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의 불안하고도 수상한 전개는 여러 면에서 23년 전의 외환위기 악몽과 닮았다. 현장의 절박함과 큰 괴리를 보이는 대통령의 인식부터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생명과 안전 보호를 최우선시하겠다”면서도 “중국인 입국금지는 불가능하다”는 모순 화법으로 일관하고 있다.
환란을 초래한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불통 리더십과 판박이다. YS는 한보사태로 부도공포증에 빠져 1997년 3월 강경식 부총리를 임명한 뒤 “구조조정은 하되, 기업부도는 내지 말라”는 이율배반적 지시를 반복했다. YS가 던진 이 ‘미션 임파서블’은 부도유예협약이라는 기형적 제도를 탄생시켰다. 부도 처리 후에 하던 자산매각·감원 등의 절차를 부도 처리 전 3개월 유예기간에 미리 진행하는 방식으로 부도인 듯 부도 아닌 ‘제3의 상태’를 만들어낸 것이다.
'모순 덩어리' 文 코로나 해법
얼핏 묘수로 보였다. 하지만 기아자동차에 협약이 적용되자 조삼모사의 허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구조조정 약속을 이행하는 척하던 기아차 노사는 부도유예 기간 중 온갖 로비로 산업은행의 출자전환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이는 해외 투자자들의 신뢰 추락을 불러 국책은행 산은마저 외환차입 불능으로 몰리고 말았다. 이후 IMF(국제통화기금)행은 필연적 수순이었다.
강 부총리는 후일 “재직 중 기아차를 바로 부도내지 못한 게 가장 후회된다”고 토로했다. “대통령과 총리, 주무 장관이 모두 나서지 않아 혼자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였지만, 그래도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못한 건 부끄러운 일”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시대를 앞서 간 에이스 경제관료’ 강경식은 그렇게 불명예 퇴진했다. 그의 통한은 ‘코로나 전선’의 야전사령관인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이 “(중국인 같은) 고위험군이 덜 들어오는 게 당연히 좋다”는 소신 관철에 더 용기를 내야 하는 이유다.
무려 90여 개국이 날벼락처럼 한국인 입국제한을 결행한 현 상황은 외환위기 직전 다급한 ‘탈(脫)한국’ 경보가 잇따랐던 때의 좌절감을 소환한다. 동방페레그린이 ‘지금 즉시 한국을 탈출하라’는 보고서를 내는 등 당시 글로벌 시장에선 ‘탈한국’ 바람이 거셌다. 코로나 쇼크 진정에는 무관심한 채 총선용 진영논리와 사적 이해관계에 휘둘려 만사를 정치화하는 선동가들의 극성도 데자뷔처럼 재연되고 있다. 그 시절에도 대선이라는 정치일정이 맞물리며 ‘국민기업 기아차’를 살려내자는 무지의 여론몰이가 전국을 뒤덮었다.
마스크보다 절실한 건 '리더십'
외환위기 때와 다른 점도 있다. 집권세력의 맹목성이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문 대통령은 제1야당 대표의 ‘중국인 입국제한 조치’ 건의에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국민의 생명·안전, 재산권과 경제활동이 위협받는 일을 ‘불가능’으로 단정한 것은 주권 문제를 야기한다. “국가는 주권이 존재할 경우에만 성립한다”(장 보댕)는 고전적 명제에 도전하는 듯한 국가원수의 공개발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강경화 장관의 ‘입국제한’ 항의 전화를 거절한 데서 보듯 한·미동맹의 온도도 변했다. 외환위기 때는 로버트 루빈 재무부 장관이 한국 채권 만기연장 거부를 제안하자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부 장관이 북한 이슈에서의 협력필요성을 제기하며 한국 편을 들었다.
‘금 모으기’ 한마음으로 위기를 극복해 낸 그때와 달리 온갖 갈등으로 나라가 분열돼 있는 것도 중대 변수다. 외환위기로 빠져들 무렵 한 외신은 ‘지금 한국에 부족한 건 달러가 아니라 리더십’이라고 썼다. 오늘도 긴 줄을 지어 시민들이 애타게 찾는 것의 진짜 이름은 마스크와 병상이 아니라 실종된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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