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 개정안의 법제화를 둘러싸고 산업계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특히 기술유용의 입증 책임을 원청기업(대기업)에 부과하는 개정안을 놓고 학계 법조계 등 전문가들의 찬반논쟁이 뜨겁다. 개정안이 4일 예정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다뤄질지 주목된다.
중소·벤처기업 등 14개 단체들은 최근 앞다퉈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과 중견기업연합회는 개정안이 “과도한 규제를 불러 올 것”이라는 입장을 내며 맞불을 놨다.
‘쟁점은 기술유용 입증 책임’
상생법 개정안의 핵심은 위탁기업(대기업 등)의 기술유용 입증 책임을 처음 명문화한 것이다. 수탁기업(중소·벤처기업)은 기술유용 피해 발생 여부를 입증하면 위탁기업이 해당 기술을 사용하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한다.
중소·벤처기업계에선 원사업자에게 기술자료를 넘겼더니 재계약 때 납품단가가 크게 떨어졌다거나 위탁기업이 거래를 끊고 해당 부품을 계열사나 제3의 하청업체에서 생산하는 등 피해 사례를 개정안 통과의 근거로 제시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한 해 중소기업의 기술유출 피해액을 1120억원대로 추산하고 있다.
이에 비해 대기업들은 “일부 기술유용 사례로 인해 또 다른 규제법안을 만드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기술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입증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하도급법(공정거래위원회)과 함께 2중·3중 규제를 양산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다.
“기술 보호 중요” vs “과도한 규제”
학계 법조계 등 전문가들의 의견도 갈린다. 손보인 변호사(법률사무소 영무)는 “전기차 배터리 특허 문제를 둘러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소송이 미국에서 진행될 만큼 국내에선 피해자가 기술유용을 입증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소기업은 모든 기술정보를 다 준 상태여서 원사업자가 이를 피해 정당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
손승우 중앙대 산업보안과 교수는 “기술 탈취 문제는 전형적인 정보 불균형 상태에서 발생한다”며 “지식재산과 관련된 보호 규정과 손해배상 요구는 시대적인 흐름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수한 중소·벤처기업을 육성하는 데 필요한 법”이라고 강조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과도한 입법’이라는 의견이다. 최 교수는 “원사업자는 수탁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거나 혁신적인 새로운 기업이 나타나도 기존 계약을 해지하지 못하는 종신계약의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산업기술은 매우 복잡하고 외부로 밝힐 수 없는 경우가 많아 기술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증명하는 것도 쉽지 않다”며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쪽에서 입증하는 것이 맞다”고 반박했다.
전삼현 숭실대 교수도 “독일에 이런 법이 있어 글로벌 중소기업이 많이 나온 것은 아닐 것”이라며 “법을 자꾸 만드는 대신 시장 자율에 맡기는 것이 장기적으로 좋다”고 했다. 전 교수는 “특히 중기부의 시정권고나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처벌(징역 1년 또는 벌금 5000만원)받게 되는 조항은 기업을 해외로 내몰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