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아프가니스탄 비사(悲史)

입력 2020-03-02 18:37
수정 2020-03-03 00:12
가장 위험하고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아프가니스탄이 또 한 번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미국과 아프간 무장조직 탈레반이 18년간의 무력충돌을 끝내는 평화협정을 맺은 것이다. 하지만 합의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아프간 정부가 “협상에서 배제됐고 탈레반 죄수를 석방할 수 없다”고 반발해 산 넘어 산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아프간인(파슈툰족)의 땅’이란 뜻으로, ‘복잡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인구 3900만 명의 약 45%가 파슈툰족이지만 이란계 타지크족, 우즈베크족, 투르크멘족, 하자르족 등이 절반을 넘는다. 국민 90% 이상이 무슬림이지만 시크교, 유대교, 불교도 섞인 다민족·다언어·다종교 국가다.

동서남북의 교역로가 만나는 ‘문명의 교차로’여서 일찌감치 번성한 문화 유산의 보고(寶庫)다. 아이 하눔의 헬레니즘 유적, 바미안의 불교 유적과 다양한 이슬람 유적 등이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 아프간에서 나는 청금석은 5000년 전부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로 수출됐고, 이를 원료로 한 ‘울트라마린’ 안료는 색채가 영구적으로 유지돼 중세·르네상스 시대에 금값과 맞먹었다.

하지만 교통 요충이란 조건은 거꾸로 사방팔방에서 공격당하기 쉽다. 고대부터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박트리아, 인도, 몽골, 티무르, 무굴, 이란 등의 지배를 받았다. 19~20세기 초 영국과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중앙아시아 패권 경쟁)’ 와중에 주도권을 잡으려던 영국과도 세 차례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국토의 절반 이상이 험준한 산악지대여서 당시 최강인 영국도 힘을 못 썼다.

1979년 소련이 10만 병력으로 침공했지만 10년 만에 두 손 들고 물러난 뒤 체제 붕괴로 이어졌다. 그래서 아프간이 얻은 별명이 ‘제국의 무덤’이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탈레반 정권이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미국의 인도 요구를 거부해 일어난 미국과의 전쟁과 끝없는 내전이 이번 협정으로 종식될지 궁금하다.

역사가 간난신고(艱難辛苦)의 연속이었으니 나라가 온전할 리 없다. 이슬람 원리주의 집단인 탈레반의 반(反)문명적 폭력과 부패로 국민은 굶고 병들었다. 1인당 소득이 600달러도 안 돼 아프리카 밖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다. 세계 아편 거래량의 90%가 아프간에서 재배돼 탈레반의 자금줄 역할을 한다. 찬란한 문화유산, 수려한 자연경관에도 ‘못난 후손들’이 나라를 지옥으로 만든 것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