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한국경제신문 애독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2차 대전 이후 최장의 강세장을 보이던 세계 증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한순간에 무너지느냐?”와 “앞으로 세계 경기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문의였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세계 경기와 증시는 미국이 좌우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융위기 극복 차원에서 미국 중앙은행(Fed)이 추진한 저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이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증시를 비롯한 국제금융시장, 그리고 세계와 각국 경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재정정책의 역할은 약했다.
미국 증시에서 강세장은 주가가 20% 이상 떨어지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월가 시장 참여자 사이에 ‘게임 체인지 위험’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이후 1주일 만에 다우존스지수가 14% 폭락했다. 이달 3일 치러질 슈퍼 화요일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 후보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굳어질 경우 강세장이 끝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의외로 많다.
미국 경기는 1990년대 부시-클린턴 국면을 뛰어넘을 정도로 장기 호황이 지속돼 왔다. 경기순환상 ‘호황’이라는 정의로는 그렇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작년부터 제기돼온 ‘10년 장기 호황 종료설’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시각이 급부상하고 있다. 세계 경기와 증시도 미국과 같은 운명을 걸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가 하나’인 시대에 세계 경기와 증시가 전후 최장의 호황과 강세장을 기록할 수 있었다는 것은 웬만한 위험에 잘 견디고 각국 간 공조 채널이 잘 가동돼 왔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한경 독자의 문의대로 세계 경기와 증시가 코로나19 사태로 한순간에 흔들리는 것은 바로 이 점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세계 경기는 ‘전후 최장’이라는 타이틀이 붙긴 하지만 연평균 성장률은 1990년대 성장국면에 비해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성장률이 조금만 떨어지면 ‘침체’라는 용어가 곧바로 부상할 수 있는 수준이다. 낮은 성장률도 금융위기 이후 계층 간 소득 불균형이 더 심해져 중하위 계층에서는 체감할 수 없다.
성장 동인은 ‘부(富)의 효과(wealth effect: 양적완화→유동성 공급→자산 가격 상승→민간소비 증가→경기 회복)’가 주요인인 만큼 주가 등 자산가격이 떨어지면 불안감이 몰려올 수밖에 없다. 오히려 각국 중앙은행의 저금리 정책으로 급증한 ‘빚의 복수’ 시대가 닥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증폭된다.
성장 생태계도 각국 간 세계가치사슬로 연결돼 중심국에서 경기가 둔화하면 순차적으로 성장률 하락 폭이 더 커지는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가 우려돼 왔다. 세계가치사슬이란 ‘기업 간 무역’과 ‘기업 내 무역’으로 대변되는 국제 분업 체계를 말한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교역 증가율과 세계가치사슬 간 상관계수는 ‘0.85’에 달할 만큼 높게 나온다.
각국 간 공조 채널은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지금의 상황은 2차 대전 직전과 흡사하다”고 한 말로 요약된다. 2차 대전 직전 상황을 보면 세계 경제 패권이 ‘팍스 브리태니카’에서 ‘팍스 아메리카나’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보호주의 물결은 ‘스무트-홀리법’으로 상징되듯 극에 달했다. 극우주의 세력은 부상했지만 국제연맹은 무기력했다.
그로부터 1세기가 지난 세계 경제는 중국의 부상이 이렇게 빠를 줄 아무도 몰랐다. 닐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는 중국과 미국이 함께 가는 ‘차이메리카’ 시대가 일러도 2020년은 지나야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양국의 경제패권 경쟁은 이보다 5년 이상 앞당겨져 벌어지고 있다. 보호주의도 1930년대에 비유될 만큼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극우주의 세력은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그 어느 때보다 세계 경제 안정을 위해 절실한 국제기구의 조정자 역할은 종전만 못하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무용론 혹은 해체론’, 국제통화기금(IMF)은 ‘파산설 혹은 구제금융설’까지 나돌 정도다. 국제규범의 이행력과 구속력은 2차 대전 이후 가장 약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경기와 증시는 각국이 어떤 식으로 대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균열됐던 각국 간 공조 채널이 강화된다면 ‘의외로 빨리 회복’될 수 있다. Fed의 구원투수 역할이 절실하다. 금리 인하 등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임을 위해 내놓는 경기와 증시 부양책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