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700만 장 풀었지만…진정되지 않는 마스크 대란

입력 2020-03-01 17:37
수정 2020-03-02 01:35

정부가 주말인 지난달 29일과 이달 1일 약국, 농협하나로마트 등을 통해 총 700만 장 이상의 마스크를 공급했지만 “마스크를 구하지 못했다”는 시민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소비자 한 명이 판매처 한 곳에서 다섯 장의 마스크만 살 수 있는 게 원칙이지만 여러 판매처를 돌아다니면 사실상 무제한으로 구매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선착순 판매’ 방식으론 개인의 ‘사재기’를 막을 수 없고, 특히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는 소외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정부가 주민센터 등을 통해 마스크를 직접 나눠주는 ‘배급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3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마스크를 직접 구매한 뒤 배분하는 방식을 고려 중이다.

사재기 못 막는 구조

정부는 지난 주말 총 717만2000장의 마스크를 약국, 농협하나로마트, 중소기업유통센터 등 공적 판매처에 공급했다고 1일 발표했다. 토요일인 지난달 29일 448만 장, 일요일인 이달 1일 269만2000장을 공급했다. 이틀간 약국에 323만7000장, 농협하나로마트에 232만5000장, 중소기업유통센터(행복한백화점)에 28만 장, 공영홈쇼핑에 25만 장, 의료기관에 6만 장이 돌아갔다. 공적 판매처에서는 마스크를 장당 800~1900원에 판다. 정부는 하루 공급 목표량 500만 장을 서둘러 채우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공적 판매처에 물량을 공급하고 있지만 마스크 구하기가 여전히 ‘하늘의 별따기’란 불만이 나오고 있다. 서울 공덕동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는 “100장이 들어오자마자 금세 다 나갔다”며 “예약제로 팔 수도 없고 먼저 오는 사람이 임자”라고 전했다. 지난달 29일 서울과 경기를 제외한 1900개 지점에서 마스크를 판매한 하나로마트에선 판매 시작 7~8시간 전부터 긴 줄이 늘어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일부 판매처에선 마스크를 사지 못한 손님이 점원에게 항의하며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오후 2시에 판매를 시작한 대전 대흥동 하나로마트에는 오전 7시부터 손님이 모여들었다. 마트 측이 번호표를 나눠줬고, 이 과정에서 번호표를 받지 못한 손님이 “오후 2시부터 판매한다고 공지했으면서 왜 오전부터 번호표를 나눠줬느냐”고 항의했다. 이 때문에 결국 경찰까지 출동했다.

인터넷 사용에 익숙하지 못해 정보에 어두운 어르신들이 마스크 구매에 애를 먹는다는 지적도 있다. SNS에는 “시골 사는 부모님이 농협에 마스크를 사러 갔더니 젊은 외지인이 줄을 길게 서 있어 결국 사지 못했다”는 글이 공유됐다.

중고거래 사이트에는 마스크를 팔겠다는 글이 늘고 있다. 정부가 공적 물량을 풀자 그동안 마스크를 대량으로 확보했던 사람들이 이를 쏟아내고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공적 판매처에서 마스크를 싸게 사서 이를 비싸게 되파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한다.

정부가 직접 배급도 고려

마스크 하루 생산량의 50%가 공적 판매처에 투입되지만 공급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정부가 직접 나서서 마스크를 국민에게 공급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민에게 마스크를 배급하고 있는데 이를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청와대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의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으로부터 마스크 공급 대책과 관련한 긴급 보고를 받고 “문제를 해결할 모든 대책을 최우선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공급 계획을 세우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정부 담당자들이 현장을 방문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해달라”고 강조했다. 이어 “마스크 공급과 유통에 장애가 되는 법과 제도가 있다면 가능한 범위에서 시급히 전개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여야 4당 대표 회동에서도 “마스크가 부족하면 추가로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동석했던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특단의 대책은 정부 예산으로 마스크를 전량 매수해 배포하는 것”이라며 “(필요한 예산이) 3000억원 규모인데 지금 상황을 지켜보고 문제가 발생하면 특단의 대책을 세우겠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마스크를 국민에게 직접 배포하는 형식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스크 배급제’를 시행하면 주민센터 등에서 가구당 일정 수량을 배포하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