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면서 이들을 치료할 의료자원 부족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대구에서만 확진자 3명 중 2명이 입원 병상을 배정받지 못해 집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증상이 심한 고위험군도 입원을 못해 사망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방역당국은 뒤늦게 확진자를 증상에 따라 네 분류로 나눠 관리하고 경증 환자는 병원이 아니라 별도 생활시설에서 치료하기로 했다.
보건당국 “경증환자, 생활시설에 격리”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차장)은 1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앞으로 1~2주가 코로나19 확산의 분수령”이라며 “2일부터 치료체계를 중증도에 맞게 변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확진자가 발생하면 중증도 구분 없이 선착순으로 음압병상을 배정한다. 앞으로는 확진자가 나오면 의료진이 경증·중등도·중증·최중증 등 네 그룹으로 나눈 뒤 경증환자는 생활치료센터에 보내기로 했다. 중등도 이상 환자만 음압병상과 감염병전담병원 등에서 입원 치료를 받는다. 보건당국은 2일부터 대구에 있는 교육부 산하 중앙교육연수원을 경증환자 생활치료센터로 쓸 계획이다. 경북 문경에 있는 100실 규모 서울대병원 연수원도 활용한다. 대구에만 1000실 정도의 경증환자를 수용할 생활치료센터를 확보할 계획이다.
환자 85% 대구·경북 집중
정부가 진료체계를 바꾼 것은 대구지역 의료 공백이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국내 코로나19 환자 3736명 중 대구지역 환자는 72.4%(2705명)에 이른다. 경북지역 환자는 14.9%(555명)다. 이 중 상당수는 의료 인력, 병상 등이 부족해 집에서 대기하고 있다. 대구시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기준 대구지역 확진자 가운데 입원 중인 환자는 898명뿐이다. 확진자 1800여 명은 입원 병상을 배정받지 못했다.
환자가 급증하면서 증상이 가벼운 경증환자와 사망 위험이 높은 중증환자를 분류하는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지난달 28일 대구가톨릭대병원 응급실로 이송한 지 1시간 만에 숨진 A씨(69·여)는 사망 직후 확진 판정을 받았다. A씨의 유족은 지난달 22일부터 증상이 시작됐고 25일 악화돼 대구 서구보건소에 문의했지만 신천지 교인이 아니고 열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때 검사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7일에는 대구에서 코로나19 입원 치료를 위해 자가격리 중이던 B씨(74·남)가 증상이 악화돼 영남대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숨졌다.
이들을 포함해 국내 코로나19 사망자 21명 중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는 10명에 이른다. 지난달 26일 이후 이런 사망자는 대구에 집중됐다.
전문가들 “검사 효율성도 높여야”
경증환자가 생활하는 치료센터는 서울대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국내 5대 병원 의료진이 관리할 계획이다. 부족한 병상 자원도 확충한다. 환자 입원을 위해 영주적십자병원, 국군대구병원 등을 개방하고 국립대병원에는 중증 환자 치료 병상을 늘린다.
하지만 정부 대응 속도가 지나치게 늦다는 비판이 나왔다. 감염학회 등에서 경증 의심환자와 중증환자를 선별해 관리해야 한다고 권고한 것은 지난달 22일이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등도 지난달 28일 경증환자 관리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에서는 환자 분류체계뿐 아니라 검사 기준도 좀 더 효율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무증상 신천지 신도까지 관리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오명돈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은 “교인 중 어떤 사람은 감염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금도 감염력이 있겠지만, 3~4주 전 감염된 사람은 회복되고 감염력이 없는 상태”라며 “이들을 전수조사해 어떤 것을 기대하는가라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중 기관 삽관을 하는 등 위중한 환자는 14명이다. 산소 치료를 받거나 38.5도 이상 열이 나는 중증 환자는 13명이다.
이지현/대구=오경묵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