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덮친 코로나 공포…'국방물자법' 꺼내 마스크 3억개 찍을 준비

입력 2020-02-28 17:08
수정 2020-02-29 01:28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장담한 지 하루 만인 27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코로나19 공포가 급속히 퍼졌다. 전날 밤 캘리포니아에서 감염 경로를 알기 힘든 확진자가 나오면서다. 샌프란시스코와 샌디에이고, 로스앤젤레스 인근 오렌지카운티 등 캘리포니아주 내 지방정부는 잇따라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미국에서의 코로나19 확산이 불가피하다’는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진단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며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직후 지역사회 전파 사례로 의심되는 첫 코로나19 환자의 사례가 보도되면서 불안감이 증폭됐다.

워싱턴포스트(WP) 등 미 언론에 따르면 이 환자는 캘리포니아주 소노마카운티에 사는 여성으로 최근 중국 등 코로나19 발생국을 방문하거나 감염자와 접촉하지 않았는데도 호흡기 증세를 보였고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CDC는 이 환자가 해외에서 코로나19에 감염돼 돌아온 환자와 접촉했을 수 있다며 지역사회 전파 외 다른 가능성을 열어놨다. 하지만 미 언론은 지역사회 전파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이미 미국에 퍼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밴더빌트대 감염질환 전문가인 윌리엄 섀프너 박사는 미 언론에 “만약 이 환자가 코로나19가 퍼진 국가에서 온 사람과 직접 접촉하지 않았다면 이는 어딘가에 파악되지 않은 다른 감염자가 있고, 이미 낮은 단계의 전파가 시작됐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이 환자의 사례를 계기로 미국의 코로나19 검사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우려도 커졌다. 이 환자는 원래 호흡기 증세로 북부 캘리포니아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다 상태가 악화해 지난 19일 UC데이비스 의료센터로 옮겨졌다. 산소호흡기를 단 채였다. 이때 의료진은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을 의심해 CDC에 감염 검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CDC는 23일에야 검사 요청을 수용했고, 이 환자는 26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의료진이 검사 요청을 한 지 1주일 만에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는 그동안 CDC가 최근 14일 내 중국 여행을 다녀온 환자와 코로나19 감염자와 접촉한 환자만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정했기 때문이다.

‘늑장 검사’가 도마에 오르자 CDC는 이날 부랴부랴 검사 기준을 확대했다. 중국뿐 아니라 감염자가 많은 한국, 일본, 이탈리아, 이란을 다녀와 심각한 호흡기 증세를 보이는 환자까지 코로나19 검사를 받도록 했다.

하지만 여전히 검사 역량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캘리포니아주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코로나19 발생이 우려되는 지역을 여행한 주민이 8400명에 달하며 이들의 감염 여부를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정부가 보유한 코로나19 진단용 키트는 200개에 불과하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가 마스크 등 보호장구 생산 확대를 위해 ‘국방물자생산법’ 발동을 검토 중이라고 로이터통신이 이날 두 명의 행정부 관리를 인용해 보도했다. 1950년 6·25전쟁 지원을 위해 처음 제정된 이 법은 국가안보 등을 이유로 대통령이 주요 물품의 생산 확대를 지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백악관의 한 관리는 “A라는 회사가 생산라인에서 80%는 페인트 작업용 마스크를, 20%는 N95 방역용 마스크를 생산할 경우 (국방물자생산법 발동 시) 우리는 기업에 ‘생산라인을 바꿔 N95 마스크를 80%, 다른 마스크를 20% 생산하라’고 말할 권한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앨릭스 에이자 미 보건복지부 장관은 25일 “정부는 현재 3000만 개의 특수 N95 마스크를 비축하고 있지만 의료진을 보호하기 위해선 3억 개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국방물자생산법 발동을 검토하는 배경이다.

과거 중국 우한 등에서 돌아온 미국인들이 한동안 격리됐던 캘리포니아주 군 기지에서 코로나19 감염자를 담당한 의료진이 제대로 된 보호장비를 착용하지 않고 치료를 했으며 이후 일반 대중과 접촉했다는 내부 고발도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보건부 내부 제보자를 인용해 이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