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투자자 4972명에게 145억여원의 피해를 준 이른바 ‘씨모텍 주가조작’ 사건 피해자들이 증권사를 상대로 낸 집단소송에서 1인당 평균 29만원을 배상받게 됐다. 대법원의 국내 첫 집단소송 선고다. 그러나 소송을 제기한 지 9년이 지나서야 피해금액의 10%만 배상받을 수 있게 돼 ‘상처뿐인 승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법조계에선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증권 관련 집단소송 제도가 소송 기간이 길고, 배상 금액도 크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법원 “증권사 과실 있지만 고의 아냐”
27일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011년 씨모텍 유상증자에 참여했다가 손실을 본 투자자 이씨 등 186명이 유상증자 주관사인 DB투자증권(옛 동부증권)을 상대로 낸 집단소송 사건의 상고심에서 “DB투자증권은 피해자들이 입은 피해액 145억여원의 10%를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집단소송에 직접 참여한 원고 186명을 포함한 피해자 4972명이 1인당 평균 29만여원을 배상받게 됐다.
피해자들은 2011년 1월 방송·통신장비업체 씨모텍이 시행한 286억원 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해 씨모텍이 발행한 기명 보통주식을 취득했다. 그러나 씨모텍은 유상증자 후 대표의 횡령·배임, 주가조작 등 악재가 터지며 결국 그해 9월 상장폐지됐다. 이에 이씨 등은 대표 주관사 겸 증권인수인인 DB투자증권을 상대로 “투자설명서와 증권신고서에 재무구조 등 투자 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을 허위로 기재한 책임이 있다”며 총 145억여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은 집단소송 허가 결정을 받는 데만 5년이 걸리는 등 총 9년에 걸쳐 진행됐다. 증권 관련 집단소송은 본안 소송이 시작되기 전 원고 50명 이상, 원고들이 보유한 증권 합계가 발행 증권 총수의 1만분의 1 이상이어야 하는 등의 조건을 제대로 갖췄는지 법원 허가를 받아야 한다. 씨모텍 주주들은 2011년 10월 소송을 제기해 2016년 11월 대법원에서 소송 허가 결정을 받았다.
본안 소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2년 후 나온 1심 판결에선 DB투자증권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되 책임 비율을 10%로 제한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가 씨모텍의 최대주주인 나무이쿼티의 차입금 220억원이 자본금으로 전환됐다고 거짓 기재해 주주들이 손해를 입은 인과관계는 인정된다”면서도 “피고가 씨모텍의 횡령·배임에 직접 관여했다거나 이를 알고도 방치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최근 4년간 제기된 집단소송 ‘0건’
대법원도 이 같은 1심 판단이 맞다고 봤다. 증권사 측의 과실이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주들이 받은 모든 피해를 배상하라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주식가격의 변동 요인은 매우 다양하고,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므로 피고 측의 증권신고서나 투자설명서 허위 기재 외에 다른 요인이 피해자들의 손해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며 “그렇다면 피고가 기업실사 과정에서 일부 기재를 소홀히 한 잘못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원고들이 입은 손해 전부를 배상하게 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은 2005년 국내 증권 관련 집단소송이 도입된 지 15년 만에 처음으로 나온 대법원의 판단이다. 집단소송 특성상 이날 확정된 배상금 14억5000여만원은 소송에 직접 참여한 원고 186명을 비롯해 총 4972명이 나눠 가지게 된다. 각자 피해를 입은 금액의 10%를 가져가는 셈이다. 1인당 평균 29만원이며, 배상액을 피해자에게 분배하는 절차도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가량 걸릴 전망이다.
법조계에선 국내 증권 관련 집단소송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한다. 소송 허가를 받는 데만 수년이 걸리는 등 오랜 기간 끝에 승소 판결을 받아내도 피해 금액의 일부에 대해서만 배상이 이뤄져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지난 15년 동안 제기된 집단소송은 매년 1~2건으로 총 10건에 불과하다. 2017년부터는 단 한 건도 없다. 증권 집단소송 사건을 수차례 수임한 경력이 있는 한 변호사는 “집단소송이 개별 소송보다 불리하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피해자 개인과 변호사들도 집단소송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