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 합금', 극저온에서 더 강한 이유는

입력 2020-02-28 17:25
수정 2020-02-29 02:03
절대영도(영하 273도) 이하 등 극저온에서 더 강해지는 특수 합금 ‘엔트로피 합금’(사진)의 비밀을 한국원자력연구원이 풀었다.

원자력연은 엔트로피 합금의 ‘적층결함 에너지’가 산업에서 널리 쓰이는 스테인리스강의 절반 이하(45%)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28일 발표했다.

보통 금속은 바둑판 같은 격자구조에 원소가 박혀 있는 결정 상태로 존재한다. 이런 금속에 과도한 힘이 가해지면 규칙적이던 격자구조가 깨지면서 불규칙한 결함이 발생하는데, 이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적층결함이라고 한다.

원자력연 관계자는 “적층결함 에너지가 낮은 금속은 힘이 가해지면 오히려 입자 크기가 작아지면서 원소배열이 촘촘하게 대칭적으로 놓이는 ‘쌍정변형’이 일어난다”며 “엔트로피 합금은 이 같은 쌍정변형이 저온이 될수록 더 쉽게 나타난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원자력연은 자체 보유한 중성자과학연구시설 ‘하나로’와 일본 양성자가속기연구소(JPARC)의 시설을 활용했다. 중성자 빔을 이용해 ㎜ 단위의 금속 소재 변형 과정을 거시적으로 한 번에 측정할 수 있었다. 기존에는 엔트로피 합금 연구 시 전자현미경을 사용해 마이크로미터(㎛) 크기만 주로 들여다봤기 때문에 실험 결과가 불완전했다는 설명이다.

원자력연은 액화천연가스(LNG) 저장탱크 및 액체수소 저온탱크 시장에 직접적으로 응용 가능한 연구 성과라고 설명했다. 세계적으로 50조원 규모에 달하는 극지 해양플랜트 소재부품 사업을 공략할 수 있는 토대를 닦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엔 원자력연을 비롯해 두산중공업,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충남대, 울산대, 순천대 등이 참여했다. 연구를 주도한 원자력연은 “국내 소재 부품 장비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가속기 시설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의 자매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지난달 실렸다. 한 달 만에 600회 이상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하며 산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