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만난 렌고(連合·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간부가 수구와 진보라는 용어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개념과 반대되는 내용으로 설명해 무릎을 친 적이 있다. 그는 일본 노동계에선 매년 똑같이 고율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좌파 노동단체 전국노동조합총연합을 수구세력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경제환경이 바뀌었는데도 과거처럼 경직적이고 구시대적인 투쟁 노선을 고집하기에 ‘수구 딱지’가 붙었다는 설명이다.”
윤기설 한국좋은일자리연구소장은 최근 펴낸 《노조공화국》에서 “국내 진보세력의 ‘대표선수’를 자처하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에 대해 ‘물음표’를 달고 진정한 보수와 수구 세력은 누구인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5~2018년 한국폴리텍대 아산캠퍼스 학장을 지낸 윤 소장은 한국경제신문에서 노동 전문기자로 30년 넘게 노사관계와 노동운동, 고용노동정책을 취재했다.
저자는 진보와 수구, 개혁과 보수의 개념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진보라는 용어는 좌파가 독차지하고 낡고 뒤처져 보이는 보수 또는 수구는 우파의 전유물처럼 돼버렸다”며 “혁신경제, 기업 경쟁력, 일자리 창출 등 미래지향적인 가치에는 소극적이면서 구시대적인 반시장, 친노동 이념 투쟁에는 적극적인 민주노총은 수구세력이라 부르는 게 제격”이라고 지적했다.
책은 ‘한국의 노동개혁’이라는 큰 주제 아래 ‘견제받지 않는 권력, 한국의 노동운동’ ‘기업 경쟁력 가로막는 붉은 깃발들’ ‘포퓰리즘 vs 노동개혁, 국가 명운 가른다’ ‘노동개혁 이렇게 하자’ 등 4개의 묶음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민주노총과 관련해선 그간 보여온 무소불위의 행태를 제시하며 국내 노동운동의 민낯을 조명했다.
“민주노총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기업체 사장실과 지방노동청 등 공공기관을 돌아다니며 기습시위와 무단 점거를 벌여왔다. 문재인 정부의 공권력은 노조의 웬만한 불법에는 뒷짐을 진다. 노동 존중이 아니라 노조 존중이다. 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는 뒷전이다. ‘법과 원칙’은 문재인 정부 들어 오히려 적폐 취급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민주노총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민주노총의 행태도 문제지만 정부가 통제는커녕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으로 대표되는 현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노동소득분배율을 끌어올려 경제성장을 이끌겠다는 정책을 폈지만 되레 수많은 자영업자와 영세 중소기업이 타격을 입었고, 양질의 일자리는 줄고 재정을 쏟아부어 노인 일자리와 비정규직만 양산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문재인 정부와 비슷한 시기에 출범했지만 정반대 정책을 펼치고 있는 프랑스 마크롱 정부와 ‘하르츠 개혁’으로 유명한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를 언급하며 리더십의 전환을 촉구했다. 그는 “‘대중은 작은 손해에도 개혁을 반대하지만 리더라면 국익에 자리를 걸어야 한다’는 슈뢰더의 말을 국내 정치 지도자들이 새겨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