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방탄소년단, 美 대중문화 장르가 되다

입력 2020-02-25 18:01
수정 2020-02-26 03:27
K무비와 K팝이 비슷한 시기에 세계 대중문화의 중심지인 미국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0일 봉준호 감독(사진)의 ‘기생충’이 비영어권 영화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휩쓴 이후 미국에서 흥행 바람을 타고 있는 데 이어 방탄소년단(BTS)이 새 앨범 ‘맵 오브 더 솔(Map of the Soul): 7’로 ‘빌보드 200’ 정상을 예약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영화 ‘기생충’은 미국 성인들에게, BTS 앨범은 청소년들에게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비주류문화가 주류문화를 흔드는 ‘왝더독’ 현상을 만들어 냈다. 두 콘텐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동시대 관심사 작품에 담아

봉 감독의 영화와 BTS 앨범은 동시대인의 관심사를 작가주의와 상업주의를 결합한 양식으로 선보였다. ‘기생충’은 신분 상승이 더 이상 어려워진 양극화 현실을 유머와 공포를 섞어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도록 재미있게 그려냈다. 미국 언론들은 ‘기생충’이 노숙자들이 급증하고, 노상 방뇨도 증가해 고민하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공감을 불러왔다고 분석했다.

BTS는 힘든 학교 생활과 입시 지옥 등 다양한 현실 이슈를 노래하면서 경쟁에 내몰린 청소년을 위로했다. 또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라고 독려했다. ‘맵 오브 더 솔’ 시리즈는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자기 정체성을 자작곡으로 탐구하는 여정이다. 강문 대중음악평론가는 “BTS는 한국 대중음악계의 양 갈래인 ‘아이돌 뮤지션’과 ‘작가주의 뮤지션’(싱어송라이터)의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고 평했다. BTS는 최근 그래미어워즈를 주최하는 미국레코딩아카데미와의 인터뷰에서 “장르가 BTS인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다양한 장르를 섞어 변주하는 작품으로 인해 ‘봉준호가 장르’란 평가를 받는다.

한국적인 요소로 주류 문화 공략

봉 감독과 BTS의 작품들은 어설프게 주류 서구 문화를 흉내내지 않았다. 한국 문화, 그중에서도 약자 격인 ‘소시민’과 ‘촌놈’이란 정체성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이로써 한국적인 요소를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기생충’은 대도시 반지하 거주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봉 감독의 초기작인 ‘살인의 추억’은 농촌 마을의 연쇄살인범과 경찰 이야기였다. ‘괴물’에서는 한강변 노점 가게 집안, ‘마더’는 시골마을의 엄마와 정신지체 아들, ‘옥자’는 강원도 산골소녀 등 대부분 소시민을 앞세워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아냈다.

BTS는 ‘촌놈’들이 꿈을 향해 성장하는 스토리를 계속 노래했다. “대구 촌놈”(‘본 싱어’ 중·슈가), “일산 출신 촌놈 빡빡이”(‘흔한 연습생의 크리스마스’ 중·RM) “전라도 씨부림땜시”(‘팔도강산’·제이홉) 등 촌놈이란 정체성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촌놈들의 꿈과 성장을 노래하면서도 “실패해도 좋다”고 다독거렸다. “러브 마이셀프, 러브 유어셀프”란 외침도 결국 잘났거나 못났거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는 의미다. 새 앨범 ‘맵 오브 더 솔: 7’은 일곱 멤버들의 자기 성찰이란 테마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런 과정이 미국 내 소수인 아시아인과 흑인, 라틴계 팬들에게 먼저 어필했고, 주류 백인 청소년들까지 포함하는 거대한 팬덤을 형성했다는 분석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미디어 환경 변화를 빼놓을 수 없다”며 “미국인들이 유튜브, 페이스북 등을 활용하면서 자막이 필요한 외국 콘텐츠에 대한 거부감이 확 줄었다”고 설명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