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만한 뒤태를 드러낸 두 여인이 물가에 서 있다. 노을이 하늘도 구름도 물빛도 불그스름하게 물들인 저녁 시간. 한 여인은 목욕을 마치고 물기를 닦고 있고, 또 한 여인은 머리를 매만지고 있다. 화면 가득한 노을빛이 물아일체(物我一體)의 느낌마저 자아낸다. 춘곡 고희동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 서양화가였던 동우(東愚) 김관호(1890~1958)가 1916년에 그린 ‘해질녘’이다.
평양의 부잣집에서 태어난 김관호는 서울에서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10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도쿄미술학교 양화과에서 공부했다. 그의 졸업 작품인 ‘해질녘’은 1916년 10월 도쿄 우에노미술관에서 열린 문부성미술전람회(문전) 특선작이다. 식민지 조선의 유학생이 일본 학생들을 제치고 문전 특선과 도쿄미술학교 수석 졸업까지 차지했다는 소식은 신문에 대서특필될 만큼 화제가 됐다. 하지만 정작 작품 이미지는 ‘벌거벗은 그림’이라는 이유로 실리지 못했다.
‘해질녘’은 한국인이 그린 최초의 누드화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선정적인 느낌이 전혀 없지만 당시로선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나마 정면이 아니라 뒤태인데도 그랬다. 누군가는 이 작품을 ‘수줍게 돌아선 누드’라고 했다. ‘최초’라는 기록을 만드는 것은 그래서 어려운 모양이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