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면서 정부가 감염병 위기 경보 단계를 최고 등급인 ‘심각’으로 높이기로 했다. 2009년 신종플루 사태 이후 11년 만이다. 대구·경북 등에서는 이달 초 이미 대규모 지역 감염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정부의 대응이 지나치게 늦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코로나19 범정부대책회의’에서 “감염병 전문가들의 권고에 따라 위기 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올려 대응 체계를 대폭 강화해 나가겠다”고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대규모로 일어나고 있는 신천지교회 집단 감염 사태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라며 “지금부터 며칠이 매우 중요한 고비”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코로나19 확산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주말에만 398명의 신규 확진자가 나와 코로나19 환자는 602명으로 늘었다. 사망자는 6명이다. 주말에만 경북 경주(1명)와 청도(2명), 대구(1명)에서 사망자가 나왔다. 신천지대구교회와 청도대남병원에 이어 부산 온천교회에서도 8명의 확진자가 나와 또 다른 슈퍼 전파지로 지목되고 있다.
전국의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 특수학교의 개학도 다음달 2일에서 9일로 1주일 연기된다. 정부가 전국 단위의 개학 연기 조치를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육부는 상황 변화에 따라 추가적인 개학 연기 조치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국내 확산 상황으로 볼 때 ‘심각’ 단계 격상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높인 것은 잘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신종플루 이후 첫 '적색경보'
종교행사·집회 금지, 전국 휴교령 가능
정부가 감염병 위기 경보를 최고인 ‘심각’ 단계로 올린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갑자기 급증해서다. 대구·경북지역을 중심으로 지난 20일부터 확진자만 하루 100~200명씩 쏟아지고 있다. 이제는 전국적으로 환자가 속출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종전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 중심의 방역 체계는 23일부터 국무총리 중심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로 격상됐다.
전국 확산 가능성…‘국가 비상’
현행 감염병 위기 경보 체계는 관심(Blue·청색경보)-주의(Yellow·황색경보)-경계(Orange·주황경보)-심각(Red·적색경보) 등 4단계다. 종전까지는 최고 바로 아래인 ‘경계’ 단계였다.
경계 단계는 감염병이 제한적 전파 수준일 때, 심각 단계는 지역사회 전파 또는 전국적 확산 수준일 때 각각 발령한다. 심각 단계라는 건 현 상황이 ‘국가 비상사태’라는 걸 공식 인정했다는 의미다. 2009년 신종플루(H1N1) 사태 때 처음 발령한 지 11년 만이다. 정부 관계자는 “최고 경보를 발령할 경우 한국에 대한 해외 인식이 나빠질 수 있지만 지금은 이런 사정을 따질 때가 아니다”며 “정부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총력 대응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선 감염자 동선을 추적하는 역학조사의 의미가 별로 없다”며 “환자가 대규모로 발생하는 단계인 만큼 그때그때 격리·치료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즉각 총리실 산하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꾸리기로 했다. 감염병 대응을 위한 최고책임자를 종전 복지부 장관(중앙사고수습본부장)에서 총리로 격상했다.
정부는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환자가 나온 지난달 20일 경보 수준을 ‘관심’에서 ‘주의’로 올렸고, 1주일 뒤 확진자가 4명으로 늘자 ‘경계’로 한 단계 더 올렸다.
군인 휴가 금지·휴교령도 가능
심각 단계에선 다양한 강제 조치들이 나올 수 있다. 대중교통 이용 등 국민 기본권도 일부 제한될 수 있다. ‘감염병 위기관리 매뉴얼’에 따른 대표적인 조치는 전국적인 휴교령이다. 코로나19의 지역사회 전파 속도가 워낙 빠르다는 점에서 초·중·고교 개학 1주일 연기에 이어 추후 연장 검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2일부터 시행한 군 장병의 외출·휴가·외박·면회 금지에 이어 예비군 훈련도 잠정 중지할 수 있다. 신종플루 사태 때도 군 장병 휴가 및 예비군 훈련을 중단한 적이 있다.
출입국 관리는 훨씬 엄격해진다. 외교부·법무부가 공동으로 외국인 입국 금지 등 출입국 관리를 대폭 강화한다. 지금은 감염병 진원지인 중국 후베이성에 방문했던 외국인의 입국만 금지하고 있다. 항공기의 감편 또는 운항 조정, 항공·철도·버스 운행 제한 및 승객 방역 등도 가능하다.
경찰청은 종교·집회 등 집단 행사를 금지하는 한편 감염 우려자들의 인적사항 및 위치정보 등을 다른 부처와 공유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대규모 행사를 금지하고 국내외 여행상품 판매를 자제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
“기본권 일부 제한”…의료인 동원
방역 대책은 ‘해외 방문자 관리’에서 ‘지역사회 관리’로 초점이 바뀐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전염병만 잘 막으면 되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의사, 간호사 등 각 지역 의료인을 동원할 계획이다. 격리병상도 추가 확보한다. 특정 지역의 민간 의료 인력을 부족한 지역에 배치할 수 있다. 코로나19 환자의 병상 부족 등에 대비해 대형 병원의 남는 병상을 감염 환자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정부는 코로나19의 경증환자를 집중 치료하기 위해 전국에 1만 개 수준의 병상을 확보하기로 했다.
별도로 코로나19 환자가 집중 발생한 대구지역 시민들에 대해선 향후 2주간 외출을 삼가달라고 권고했다. 또 감염증이 유행하는 동안 결혼식이나 장례식의 단체 식사도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
전문가들은 위기 경보를 단순히 격상하는 것보다 실효성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대집 의사협회장은 “총리가 결정한 사안에 대해선 부처 간 이견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현/박재원/박종관/조재길/이미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