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딸 친구들이 제 이야기를 딸에게 할까 봐, 그걸 들은 딸이 저보다 더 아파할까 봐…. 그게 가장 두렵습니다….”
골프계를 넘어 스포츠계 전체를 뒤흔든 ‘그 사건’. 깍지를 몇 차례나 끼었다가 풀었다를 반복한 사건의 ‘피의자’ 김비오(30·사진)가 한참 땅을 응시하다 입을 뗐다. 이달 초 그를 만난 곳은 경기 수도권 골프연습장에 있는 한 카페. 땅이 꺼질 듯한 한숨 탓에 카페 안 공기는 교도소 면회실의 그것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인터뷰를 내내 고사했던 김비오는 “징계를 받았을 때 팬들에게 제대로 사과하지 못한 것 같아 고심 끝에 이 자리에 나왔다”고 했다. “훗날 딸에게 조금이라도 떳떳하도록 만회할 기회를 주었으면 한다”며 “진심으로 팬들에게 사과하고 또 제대로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사건’이 일어난 지 약 반년이 지났다. 앞서 한국프로골프협회(KPGA)는 지난해 9월 대구경북오픈에서 그의 경기를 방해한 갤러리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내민 김비오에게 ‘3년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다. 여론은 ‘솜방망이 처벌’과 ‘중징계’로 극명하게 나뉘었다. 하지만 관계자 사이에선 선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중형’이란 평이 많았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2승을 거둔 배상문(34), ‘골프 천재’ 노승열(29) 등이 2년의 군 복무 후 아직까지 적응에 실패하고 있어서다. ‘실형’을 선고받고 카메라 앞에 무릎 꿇은 그날, 김비오는 “모든 것을 내려놨다”고 했다.
무너져 내리던 그를 잡아준 건 만삭의 아내였다. 한 살 연상의 배다은 씨는 김비오와 결혼하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내조에 모든 것을 건 ‘인생의 은인’이다. 2년 전 김비오가 PGA 웹닷컴(2부·현 콘페리투어) 투어를 전전할 때도 따라다니며 외로움을 함께 나눈 이가 배씨다.
“아내는 제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나 봐요. 집에 돌아갔는데 아무 말 하지 않고 저를 꼭 안아주더라고요. 저는 눈물이 나는데 아내는 끝까지 울지 않았어요. 사람은 실수하지만, 실수를 어떻게 만회하느냐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여준다고 말하면서…. 아내에겐 항상 미안하고, 또 고맙다는 말밖에….”
김비오를 질타하던 주변에서도 그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의 돌발행동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호반건설은 계약해지 대신 ‘김장 봉사 활동’을 권했다. 스스로도 죗값을 치르고자 당시 우승 상금의 상당 부분을 모교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어린이 소아청소년 심장센터에 기부했다. 김비오를 평소 옆에서 지켜본 한 후배 프로골퍼는 “평소 욕 한 번 안 했던 형이었기 때문에 이번 일은 매우 당황스럽다”면서도 “형의 평소 모습을 잘 아는 분들이 여기저기서 기회를 주지 않나 싶다”고 했다.
‘무조건 내 잘못이며,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다”는 그에게 협회도 ‘마지막 기회’를 허락했다. 3년이던 징계를 1년으로 경감했다. 그는 2021시즌부터 KPGA코리안투어에서 뛸 수 있다.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PGA투어와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아시안투어 등에서 뛰는 것을 막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팬들께선 제가 해외 투어에서 도전하는 것도 탐탁지 않게 여기실 수 있지만, 지난해 12월 태어난 딸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다시 국내 팬들을 찾아뵐 땐 한층 더 성숙한 모습으로 나타나겠습니다.”
용인=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