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후 6시30분 서울 마포구 성산동 마포구청 앞. 공무원 대부분이 퇴근하자 흰 보호복을 착용한 사람 3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국방역협회 소속 15개 방역업체에서 파견한 직원들이었다. 이들은 각자 초미립살포기를 들고 소독약을 구청 내 사무실 곳곳에 분사했다. 구석까지 꼼꼼히 방역하길 2시간째, 방역업체 이푸른의 한 직원은 “건물 내 엘리베이터 버튼과 문손잡이를 하나씩 소독약으로 닦아내다 보면 보호복 안에 땀이 가득 찬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지역사회로 빠르게 확산하면서 방역 최전선에서 일하는 이들의 일손이 더욱 바빠졌다. 지난해보다 소독 작업 건수가 네 배 이상 늘어나는 등 급증한 방역 수요를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코로나19 등 감염병 발생으로 국내 방역산업은 연 매출 1조원이 넘는 산업으로 성장했다.
“평소보다 소독약 세 배 늘려 방역”
이날 마포구청과 마포보건소를 소독하는 데 사용된 소독제는 차아염소산나트륨, 제4급 암모늄화합물, 알코올 등 세 가지 용액으로 540L가 쓰였다. 평소 소독 시 사용하는 소독제 양(200L)의 세 배가량이다. 마포구청을 방역한 한 업체 관계자는 “평상시엔 해충 구제 목적으로 살충제를 주로 분무하지만 감염병 확산 우려가 있으면 살균소독제를 시설 내부 전체에 분사한다”며 “살균소독제를 평소의 세 배는 더 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방역업체 직원들이 마포구청 내부를 소독하는 데는 초미립살포기 10대가 동원됐다. 실내·실외에 따라 방역 작업에 사용하는 기구도 달라진다.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실외에선 비교적 큰 입자를 많은 양으로 분사할 수 있는 분무기가 주로 사용된다. 입자 크기가 크면 소독제가 공중에서 체류하는 시간도 짧기 때문에 분무기로는 공중에 떠 있는 비말까지 소독하기 어렵다. 마포구에 있는 한 방역업체 대표는 “분사되는 입자 크기가 작은 초미립살포기를 통해 코로나바이러스에 유효한 살균 소독제를 살포해야 시설 내부의 방역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초미립살포기로 실내 소독을 하더라도 안심할 수는 없다. 통상 소독제의 약효는 길어야 1주일가량이기 때문이다. 1회 소독으로 현장에 남아 있는 바이러스와 세균을 사멸할 수는 있지만 한 주가 지나 새로운 오염원이 침투하는 경우 다시 소독을 하는 수밖에 없다. 한국방역협회 관계자는 “예방 차원에서 소독하는 것이라면 매주 방역을 해야 한다”며 “문손잡이 등 통행자들의 손길이 많이 가는 사물도 주기적으로 청소하는 게 감염을 예방하는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방역업체 직원들은 밤낮없이 소독 업무에 투입되고 있다. 낮에 주로 업무를 봐야 하는 공공시설이나 다중이용시설은 밤에 소독작업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홍원수 한국방역협회 회장은 “고객마다 요구하는 시간대가 달라 불규칙한 수면으로 회원들이 과로를 호소하는 상황”이라며 “코로나19가 더 확산하면 현재 인력으론 업무량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방역업체 삼양인터내셔날 관계자는 “지난해 이맘때보다 소독 문의가 열 배, 소독 건수는 네 배 증가했다”고 전했다.
방역 주문이 폭주하다 보니 방역업계는 소독제 품귀 현상까지 겪고 있다. 사용해야 할 소독제 양이 급증했는데 소독제 가격은 올라가고 있다. 서울 은평구에 있는 방역업체인 거문환경 관계자는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살균소독제 500mL 용량을 두 달 전에는 5000원이면 구매할 수 있었는데 현재 1만4000원까지 가격이 뛰었다”며 “사용하는 소독제 양도 많아지고, 단가도 올라 비용 상승이 불가피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다른 방역업체 관계자는 “소독제 가격과 인건비 상승으로 두 배가량 뛴 비용을 한 지방자치단체에 제시했다가 ‘가격을 올려 폭리를 얻으려는 게 아니냐’는 항의를 받았다”고 하소연했다.
방역 시장 급성장했지만 대부분 영세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신종플루, 메르스 등 5~7년마다 발생하는 감염병 사태를 겪으며 국내 방역 시장 규모는 꾸준히 커지고 있다. 한국표준산업분류(KSIC)상 ‘소독, 구충 및 방제 서비스업’의 전체 매출은 2018년 기준 1조114억원으로 2014년 4984억원과 비교해 4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소독, 구충 및 방제 서비스업에는 건물 방역 및 살균, 소독과 해충 구제 서비스 등이 포함된다. 이 산업으로 분류된 업체 수도 같은 기간 1616곳에서 1865곳으로 15.4% 늘었다.
방역 시장은 급성장했지만 연 매출 5억원 미만인 영세업체가 네 곳 중 세 곳꼴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국내 방역업체 총 1865곳 중 연 매출이 5억원 미만인 곳은 1405곳으로 전체의 75.3%를 차지했다. 연 매출이 100억원 이상인 업체는 단 8곳에 불과했다. 2015년(6곳)보다 2곳 늘어나는 데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을 과점하는 일부 업체를 제외하면 대부분 영세한 업체들”이라며 “이런 산업 생태계에서는 새로운 기술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형 방역업체로는 국내 시장 1위인 세스코와 GS그룹 계열사인 삼양인터내셔날 등이 꼽힌다. 세스코는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인천국제공항 면세구역을 비롯해 신세계백화점 본점, 롯데백화점과 불교문화사업단, 각급 학교 등 다양한 기관과 계약을 맺고 소독작업을 하고 있다. 세스코 관계자는 “작업자들의 위생 상태까지 신경써야 해 조심스럽다”며 “사실상 전시상황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방역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양인터내셔날이 운영하는 해충방제 서비스 브랜드 휴엔케어도 인천공항 소독을 맡고 있다.
드론·로봇 방역…국내는 걸음마 단계
최근 방역업계에서는 대인 접촉을 최소화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드론과 로봇 활용에 주목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2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온 중국은 이미 드론을 방역 현장에 쓰고 있다. 중국의 드론업체 MMC는 드론 100여 대로 소독제를 살포하고 통행자의 체온을 측정해 상하이와 광저우 등 중국 대도시 방역을 돕고 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시민에게는 드론이 스피커를 통해 “신속히 귀가하라”고 권고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지난 19일 수원월드컵경기장과 수원 장안구의 초·중·고교 49곳에서 드론을 통한 소독약 살포가 이뤄졌다.
방역용 로봇도 각광받고 있다. 공간이 좁고 장애물이 많은 실내에서는 드론보다 로봇이 방역에 용이해서다. 미국과 중국에선 감염병 전파 가능성이 높은 병원에서 로봇을 체온 측정, 살균 등의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방역용 로봇산업은 걸음마 수준이라는 평가다. 국내 로봇업체 유버가 내놓은 자외선 살균로봇 정도가 주목할 만한 성과다. 또 다른 로봇업체인 휴림로봇 관계자는 “현재는 소독보다는 열 감지와 환자·의사 간 물류 운송 목적으로 로봇을 활용하고 있다”며 “소독 목적으로 로봇을 쓰려면 자율주행과 공간인식에 쓰이는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현/노유정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