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는 어려운 일입니다. 필자는 1996년 미국에서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이론을 배우고, 모의 투자를 하고, 실전 투자에 나섰습니다. 하루 일곱 시간 정도 모니터를 보고, 주문을 내고, 다시 모니터를 보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다리가 욱신거리며 몸살이 걸린 것 같았습니다. 저를 지도하던 멘토에게 물었습니다. “투자가 왜 이렇게 어려운가요?” 그는 창문을 가리키며 바깥을 보라고 했습니다. “뭐가 보여?” 당시 저는 43층에서 근무 중이었습니다. “사람들과 택시가 보입니다.” “투자가 쉬우면 아무도 택시를 운전하지 않아.”
초기의 제 투자는 기술적 분석이었습니다. 기술적 분석은 저에게 ‘종교적 투자’였습니다. 이유는 몰랐지만 가격이 오르면 남들을 따라서 샀고, 가격이 하락하면 그들을 추종하며 팔았습니다. 조금 더 신과 가까이 가고 싶어서 패턴 연구도, 파동 연구도, 인디케이터 연구도 했지만 신과의 거리는 여전히 멀었습니다. 이유는 알고 사고 싶고, 팔고 싶었습니다. 쉬운 일이라 생각했던 가격 분석을 버렸습니다.
가격이 아닌 가치로 돌아서면서 저의 투자는 ‘과학적 투자’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더 걸렸지만 근본 원인을 알 수 있어서 마음은 오히려 편안했습니다. 그러나 과학적 투자에는 다른 유파가 있었습니다. 주식의 경우 크게 두 가지 철학은 싸게 사는 가치투자와 모멘텀을 사는 성장투자로 나누어집니다. 가치투자자와 성장투자자 모두 주가수익비율(PER=Price/EPS)이 일정하다는 가정으로 출발합니다. 가치투자자는 수익가치(EPS)에 큰 변화가 없는데 가격(price)이 하락하면 다시 가격이 제자리로 복귀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매수합니다. 성장투자자는 EPS가 상승한 것에 비해 가격이 적게 상승할 때 EPS의 상승폭만큼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투자합니다.
가치투자자는 바람 빠진 풍선이 정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성장투자자는 풍선이 커져가는 것에 집중합니다. 가치투자자의 위험은 풍선이 바람 빠진 상태에서 오래 머무는 것이라 인내를 미덕으로 삼고, 매수 후 보유 전략을 추구합니다. 성장투자자의 위험은 풍선이 중간에 터져버리는 것이라 조심성을 미덕으로 삼고 매수 후 매도 전략을 추구합니다.
이 두 가지는 마치 동과 서, 남과 북, 양과 음처럼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이고,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개인적인 성향과 위험 선호도가 차이를 만들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필자는 투자 대가인 워런 버핏의 책을 읽고 가치투자자의 철학을 추구하고자 했습니다. 실증분석결과 발표된 파마 프렌치 모델 또한 기업 규모에서는 대형주보다 소형주가, 투자 스타일에서는 성장투자보다는 가치투자가 더 낫다는 결론이 있었기에 이들을 결합해 소형 가치투자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는 결론으로 가치투자, 매수 후 보유 전략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는 가치투자자인 저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다시 인터넷을 서핑하고 자료를 찾으면서 저의 투자는 또 바뀌어 갔습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철학의 차이라고 생각했던 가치투자와 성장투자의 차이도 조금 더 분석해보면 성장투자가 옳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미래가치를 판단하기에 소형주보다는 대형주가 훨씬 더 유리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미래기업가치(forward price)는 미래의 이익(forward EPS)과 밸류에이션(price/EPS)으로 분해될 수 있습니다. [표]와 같이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최고의 시나리오(실적이 좋아지는 데 PER가 낮은 경우)와 최악의 시나리오(실적은 하락하는 데 PER가 높은 경우)에 대한 판단은 매우 쉽습니다. 문제는 다소 비싸도 실적이 상승하는 기업을 매수할 것인가, 실적이 나빠도 저평가된 기업을 매수할 것인가 입니다.
정답은 PER이 높아도 실적이 상승하는 기업이 낫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시나리오와 두 번째 시나리오를 모두 보여주는 경우가 애플입니다. 2016년 2분기 애플은 ‘실적상승’과 ‘주가저평가’가 모두 맞아떨어지는 최고의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버핏은 애플 주식을 매수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상황은 두 번째에 해당합니다. 두 번째 상황은 사실 애플을 통해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마존을 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2015년과 2016년 아마존의 주가는 이미 최고점 수준에 닿아 있습니다. (붉은 선 라인이 해당 기업의 최고 PER 레벨) 실적 상승이 폭발적이기에 아마존은 고평가의 우려를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영구 존속하는 기업의 미래가치를 평가하기에 ‘미래실적모멘텀’이 ‘과거에 기반한 밸류에이션 밴드’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버핏도 시즈캔디를 매수하던 시기부터 실적이 하락하는 저평가기업을 매수하기보다 실적이 좋은 기업을 적절한 가격에 매수했습니다. 성장기업을 가치투자방식으로 매수하는 것을 가장 선호하지만, 딱 하나만 고른다면 성장투자로 돌아선 것입니다.
이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경우가 있습니다. 2016년 애플을 사던 버핏은 월마트를 팔았습니다. 당시 월마트 실적은 하락했지만 주가는 충분히 저평가 상태였습니다. 현재 밸류에이션 밴드에서 버핏이 여전히 애플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증거에 해당할 것입니다. 성장투자의 미래가 가치투자의 과거에 판정승을 거두었습니다.
최일 < 이안금융교육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