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중공업이 지금 명예퇴직 신청자를 받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발전설비와 담수화시설에 건설부문까지 있는 연매출 15조6597억원(2019년)의 한국 중공업의 대표 기업이다. 한국은 물론 세계 시장을 상대로 원자력발전소 화력발전소 같은 발전플랜트 사업을 하는 초대형 회사다. 이런 전문 대기업이 감량 감원을 하는 것이다. 2월20일 시작된 신청자 모집은 3월4일까지 계속된다.
‘최고의 직장’으로 꼽혔던 에쓰오일도 1976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 계획안 설명회를 가졌다. 50세 이상이 대상이다. LG디스플레이 현대제철 같은 곳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거나 계획 중이다. 롯데쇼핑은 700여개 대형 점포 중 200개를 줄이기로 했다. 이 회사에서만 수천 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나온다.
두산중공업의 경우, 가뜩이나 세계 발전시장이 침체 국면인데다 탈원전 정책으로 향후 일감이 줄어들게 된 상황이 회사 경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무직, 기술직 할 것 없이 2600여명에 달하는 45세 이상 전원에 명퇴 신청 기회를 준 것에서 회사가 얼마나 다급한지 짐작할 수 있다. 이 회사도, 에쓰오일도 그런 위기감 속에서도 명퇴금은 준다고 한다. 하긴 명퇴금 없이 고용시장에 이렇게 차가운 바람이 부는 데 누가 나가겠나. 어떻든 ‘썩어도 준치’라더니 대기업이 그래도 다르다. 근속연수에 따라 최 24개월 치 임금도 주고, 20년 이상 근무자에게는 5000만원의 위로금도 있다. 이래서 예부터 ‘머슴을 살아도 부자 집 머슴을 살아라’고 했던가. 두산처럼 감량 감원으로 위기를 돌파하려해도 명퇴금이 없이 못하는 곳도 적지 않을 것이다. 회사가 완전히 좌초지경에 달해 제대로 퇴직금도 받지 못한 채 찬거리로 나서는 근로자들도 줄을 잇게 될 판이다.
관심사는 40대~50대들의 줄퇴직이다. 4050세대는 경제활동의 허리, 국가 사회를 떠받치는 중산층 밀집지대다. 기술이면 기술, 영업이면 영업, 기획·전략이면 또 그런 쪽대로 한창 일을 하며 성과도 낼 시기다. 개인적으로는 조직 내 크고 작은 리더 역할을 하면서 일하는 재미도 느낄 시기다. 역할과 의무가 적지 않겠지만 권리 권한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인생의 황금기 장년(壯年)기다. 그런데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일터에서 밀려난다? 생활은 어떻게 하며 재취업은 어떻게 기약하나. 아파트 구입 대출금도 남았을 상황이고, 아들딸 학비도 아직은 만만찮은 시기다. 부모님 생활도 조금은 보조해드릴 때다. 동창회나 뭐다 친목과 정보교류, 때로는 자기개발 공부까지 온갖 모임도 전부 돈이다.
그런데 이들이 밀려나고 있다. 근로기준법을 비롯해 노동관련 법들은 이른바 ‘쉬운 해고’를 막고 있지만 기업의 존립이 어렵고, 사업이 지속가능하지 못하는 판이면 다 무슨 소용인가. 4050세대 가운데 2019년 ‘비자발적 퇴직자’가 48만8544명에 달했다. 통계청의 원자료를 바탕으로 한 추경호 국회의원의 분석이다. 2018년보다 3만명 이상 늘어난 숫자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과 비교해보면 8만2000명 이상 증가했다. 2017년까지 해마다 조금씩 줄어들다가 증가로 반전된 현상도 짚어둘 만하다. 정부(통계청)가 매달 하는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퇴직자의 경우 퇴직 사유를 묻는다. 크게 봐서 자발적 퇴직자, 비자발적 퇴직자로 나눈다. 직장이 휴업 또는 폐업, 명예퇴직, 조기퇴직, 정리해고, 일거리 소진, 사업부진, 임시·계절적 일의 완료 등으로 실업 상태가 되면 비자발적 퇴직자다. 이런 퇴직자의 증가는 위기 신호다. ‘제조업의 위기’, ‘자영업자 몰락’ 같은 어두운 보도 분석과 같은 맥락의 현상이다.
40대 취업자 감소는 통계청 월간 고용동향 조사가 나올 때마다 언론의 조명을 받는 대목이다. 지난달(2020년1월)에도 8만4000명이 줄었다. 2015년11월부터 51개월째 감소세다. 취업상태 여부를 보여주는 고용률도 78.1%로, 2018년 1월에 비해 0.2포인트 내려갔다. 통계상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는, 조사에서 ‘쉬었음’ 응답자 중에서도 40대가 많이 늘었다. 2만5000명에 달했다. ‘쉬었음’인구는 50대도 4만4000명 증가했다.
답답하기는 2030세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같은 통계청 1월 조사를 보면 일할 수 있지만 그냥 쉬는 20대~30대가 56만5000명이다. 1년 전 같은 달과 비교하면 3.7%(2만명) 늘어났다. 물론 공식 통계로 이 정도다. 실상은 더 나쁠 것이라는 얘기다. 원하는 일자리가 없어서 쉬고 있거나, 일거리가 없어서 쉬는 사람, 취업준비자, 조기퇴직자, 명예퇴직자 등으로 20대 백수, 무직 실업자가 많은 것도 우리 사회의 잠재 폭탄이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 실업은 늘어나게 돼 있다(오쿤의 법칙). 소득주도성장,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주52시간 근무제 등등으로 성장률이 바닥이 된 판에 ‘우한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소비와 투자가 한껏 위축되는 데 고용시장에 무슨 용빼는 수가 있겠나.
활발해진 것은 60대~70대 고용이다. 1월에 60세 이상 취업자는 1년 전과 비교해 50만7000명 늘었다. 1982년7월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큰 증가폭이다. 늘어난 직군을 보면 ‘아, 하!’ 소리가 나올 것이다. ‘보건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에서만 18만9000명이다. 간병인, 노인 돌보미 등 나랏돈으로 운영되는 일자리다. ‘운수 및 창고업’에서도 9만2000명 늘어난 것을 보면 경비직 같은 쪽 취업자도 적지는 않을 것 같다. 어떻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만든 관제(官製)일자리의 실태는 곳곳에서 다양하게 확인된다. ‘대박’이라면 해당 세대에는 야박하거나 매몰찬 얘기가 되겠지만, 젊은 세대들 눈으로 볼 때 그런 측면이 있다. 아들 손자 일자리 다 줄어드는 판에 할아버지 할머니 일자리만 생긴다면, 어떻게 말한들 그게 정상인가. 다만 6070세대 일자리 증가도 앞으로는 조금 주춤해 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019년 1월부터 정부가 노인일자리를 워낙 많이 만들어 늘어날 만큼 늘어나기도 했다.
6070의 취업증가는 분명 양면성이 있다. 오랫동안 일할 수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 축복이면서 한편으로는 삶의 고통도 된다. 수명은 늘어났는데 자산이나 소득이 없어 부득불 일해야한다면 안타까운 현실이다. 오죽하면 ‘장수(長壽)리스크’까지 나오겠나. 하지만 2030은 일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고, 4050은 본인 의지와 관계없이 밀려나는 판에 6070은 그래도 일을 할 수 있다면 분명 불균형과 괴리가 존재한다. 이렇게 된 데는 산업적, 기술적, 사회적 트렌드도 있겠지만 정책적 오류 문제가 있다. 그 부분이 문제다. 정책의 잘못으로 고용시장을 왜곡시킨다면 문제다. 세대갈등도 초래할 수 있고, 건전하지 못한 경제로 전락할 수도 있다. 바로잡아야할 때를 이미 넘겼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고용·노동시장의 개혁 같은 진짜 중요한 이슈는 계속 뒷전으로 밀린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