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새벽 3시. 서울 양재동 쿠팡서초물류센터에는 차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센터 안에 차를 주차하고 둘러보니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대부분이었다. 벤츠, BMW와 같은 수입차도 눈에 띄었다. 모두 쿠팡플렉스에 지원한 사람들이 세워둔 차였다. 쿠팡플렉스는 자기 차로 쿠팡 물건을 배송하고 일당을 받는 단기 아르바이트다. 이날 새벽 모인 사람은 80여 명. 그들과 함께 10여 분간 주의사항을 들은 뒤 21개 박스를 배정받았다. 담당자는 “초보자는 약 30건, 숙련자는 80건 정도 받는다”고 했다. 현장을 담당하는 쿠팡 직원은 “오전 6시40분까지 무조건 고객이 원하는 곳으로 갖다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잘못된 주소로 배송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새벽 6시40분까지 배달 완료하라”
쿠팡이 급증하는 택배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도입한 플렉스를 체험하기 위해 물건을 차에 싣고 서둘러 배송에 나섰다. 배정받은 서울 방배동 지역을 부지런히 돌았다. 21개 상자를 아홉 곳의 배송지에 가져다놓는 데 걸린 시간은 2시간30분 정도. 일은 오전 6시가 안 돼 끝났다. 이렇게 해서 번 돈은 4만6700원. 돈은 2주 뒤에 계좌로 보내준다고 했다. 여기서 소득세(3.3%), 기름값 등을 빼면 4만2000원 정도를 번 셈이다.
이날 물류센터에서 만난 김모씨(31)는 “오전 2시부터 7시까지 많을 땐 75개 정도 배송해서 하루 15만원, 시간당 3만원씩 벌기도 한다”며 “익숙해지면 벌이가 훨씬 나아진다”고 말했다.
하루 주문 100만 건 이상 폭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온라인 쇼핑이 늘어나 쿠팡플렉스의 역할은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쿠팡 측은 밝혔다.
지난달 28일 쿠팡은 역대 최다인 330만 박스를 배송했다. 올 들어 하루 평균 200만 건에서 약 70~80% 늘었다. 쿠팡이 급증한 주문을 큰 무리 없이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은 쿠팡플렉스 같은 단기 배송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쿠팡은 2014년 자체 배송 시스템 ‘로켓배송’을 구축하고 쿠팡맨을 직접 고용했다. 쿠팡맨은 현재 6000여 명이 있다. 2018년 말 새벽배송을 시작하면서 인력이 더 필요했지만 쿠팡맨을 충분히 늘릴 수는 없었다.
쿠팡의 ‘묘수’는 쿠팡플렉스였다. 전문 배송 인력이 아닌, 단기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만들었다. 이 일자리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다. 쿠팡플렉스에는 현재까지 10만 명 넘는 사람이 등록했다. 이 가운데 하루 평균 5000명 안팎이 꾸준히 일한다.
쿠팡플렉스에는 최근 지원자가 크게 늘고 있다. 배송량이 폭증하자 쿠팡이 건당 배송비를 크게 올린 영향이다. 새벽배송 기준 한 건당 배송비는 작년 말 1000원에서 최근엔 2300원대로 두 배 이상으로 치솟았다. 이에 따라 쿠팡플렉스들도 ‘특수’를 누리고 있다. 새벽배송(오전 2~7시)이 낮 시간대 배송(오전 11시~오후 8시)에 비해 배송 단가가 높아 특히 인기다.
쿠팡플렉스 배송인 천태만상
높아진 단가 덕에 ‘꿀 알바’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주간에는 본업을, 새벽에는 쿠팡플렉스를 하는 투잡족도 늘고 있다고 쿠팡은 분석했다. 쿠팡플렉스는 배송 지역과 시간 등을 직접 고를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이날 서초물류센터에서 만난 한 커플은 11인승 카니발을 끌고 2인 1조로 새벽배송을 했다. 이들은 분업을 통해 시간을 절약했다. 한 명은 차에 물건을 옮기고, 한 명은 이동 동선을 짜는 식이다. 이들은 “개인 역량에 따라 퇴근시간을 앞당길 수 있어 2시간에 5만원 정도를 벌 수 있다”며 “배송할 때 운전자와 물건 나르는 사람을 나눠서 효율을 높였다”고 말했다.
무료 렌터카인 ‘뿅카’를 끌고 온 중년 여성도 눈에 띄었다. 뿅카는 광고가 붙은 차량을 무료로 빌려주는 서비스다. 박모씨(47)는 “집안일만 해서 심심하기도 하고 밤에 잠도 잘 안 와 소일거리 삼아 할 겸 나왔다”고 말했다.
근무 유형 갈수록 다양해져
쿠팡플렉스가 입소문을 타고 대중화되면서 근무 유형도 다양해지고 있다.
쿠팡은 작년 3월 ‘플렉스플러스’란 근무 유형을 새로 마련했다. 쿠팡플렉스와 일하는 방식은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하루 단위가 아니라 월 단위로 물류센터와 계약을 맺는다는 것이다. 배송을 주된 업무로 삼는 사람이 주로 한다. ‘싱귤레이션’(낱개 포장품)을 별도로 배송하는 일자리도 있다. 주로 물류센터에 뒤늦게 도착한 나머지 상품을 처리한다. 포장 하나에 제품이 딱 하나만 들어 있어 부피가 작고 가볍다. 대신 배송 단가는 일반 상자의 60% 수준이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