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계 주름잡는 '컨설턴트 출신 CEO'

입력 2020-02-20 17:23
수정 2020-02-21 01:04
지난 19일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가 4년 만에 수장을 바꿨다. 새 대표이사로 선임된 이지은 부사장은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라는 점과 함께 액센츄어에서 25년간 정보기술(IT) 전문 컨설팅으로 잔뼈를 다진 경력이 눈길을 끌었다.

IT업계에 컨설턴트 출신 CEO가 줄줄이 등장하고 있다. MS를 비롯해 IBM, 시스코, SAP 등 대표적인 글로벌 IT 기업의 한국 지사장을 컨설턴트 출신들이 독식하고 있다. 바야흐로 ‘컨설턴트 CEO 전성시대’인 셈이다.


외국계 IT 기업 지사장 자리 싹쓸이

IT 전문 컨설턴트 출신 지사장 1세대는 조범구 시스코코리아 대표다. 액센츄어에서 약 20년간 IT 및 비즈니스 컨설팅을 했다. 2004년 액센츄어코리아 첨단전자산업부 대표를 거쳐 2008년부터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가전 소비자 전자산업 전반을 총괄했다. 조 대표는 2009년부터 2년6개월간 시스코코리아를 이끈 뒤 2016년부터 대표이사 ‘재수’를 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취임한 이성열 SAP코리아 대표도 27년간 IT 분야에서 활약한 컨설턴트 출신이다. 1990년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서 시작해 한국IBM의 BCS(비즈니스 컨설팅 서비스) 대표와 GBS(글로벌 비즈니스 서비스) 대표를 지냈다. 전통기업의 디지털 혁신을 도운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해 6월 《디지털 비즈니스의 미래》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이 대표의 ‘달변’이 SAP코리아 상승세를 이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어려운 IT 세계를 쉬운 언어로 풀어내는 것은 물론 어떻게 기존 사업과 잘 접합할 수 있을지 전략도 세워줬다는 것이다. 송기홍 한국IBM 대표, 스토리지 솔루션 기업 넷앱의 김백수 지사장도 컨설턴트 출신이다.

언변 뛰어나고 기업도 잘 알아

컨설턴트는 업계의 조언자 역할을 한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기업의 위기와 기회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주업이다. 시야가 넓고 기업·업계의 업무 전반을 잘 이해하고 있어 최근 각 분야 요직을 꿰차는 사례가 늘고 있다.

IT 전문 컨설턴트 출신이 CEO로 활약하는 것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전환)’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상품을 팔아야 해서다. 이전까지 IT 기업의 주력 상품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였다. 실재하는 제품이 있기에 기능과 효용을 강조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다르다. 어떤 데이터를 모으고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를 알려줘야 하는데 이렇다 할 실체가 없다.

조 대표는 “업무 구석구석을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를 제시하고 그에 따르는 가치를 설득해야 하는 일”이라며 “컨설턴트들과 업무 성격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임직원으로도 컨설턴트를 선호한다. 시스코코리아는 최근 확대한 트랜스포메이션 오피스 조직을 컨설턴트 출신으로 채웠다. 오라클도 이태규 부사장, 박재범 전무 등 최근 컨설턴트 출신 인재를 대거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타트업업계에도 컨설턴트 출신이 활약하고 있다. 업무 프로세스 전반을 파악하고 있고 업계 흐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장점이 빠른 의사결정, 시대흐름을 이끌어야 하는 스타트업과 맞아떨어진다는 평가다.

국내 최초로 새벽배송 시장을 개척한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는 창업 전 맥킨지앤드컴퍼니 홍콩지사와 베인앤드컴퍼니 한국지사에서 일했다. 면도기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와이즐리의 김동욱 대표와 반도체 팹리스(설계) 업체 파두의 이지효 대표는 베인앤드컴퍼니 출신이다. 오픈소스 반도체 IP(설계자산) 리스크파이브 기반 반도체 스타트업 세미파이브코리아 조명현 대표는 보스턴컨설팅에서 경력을 쌓았다.

조수영/김남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