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업 규모와 업종, 학력 등에 따른 임금 분포 현황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성차별, 학력 차별을 줄이고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축소하겠다며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세운 사항이었다.
노동시장 양극화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지만 일각에선 산업현장의 노사 갈등과 중소기업 기피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고용노동부는 18일 한국노동연구원이 운영하는 온라인 사이트인 임금직무정보시스템을 통해 ‘사업체 특성별 임금 분포 현황’을 공개했다. 5인 이상 사업체의 상용직 근로자 임금(연봉)이 공개 대상이다. 임금 수준은 학력보다는 기업 규모와 경력(호봉)에 따라 차이가 컸다. 전업종 대졸 1년차 평균 연봉은 30인 미만 사업장이 2852만원, 500인 이상 기업은 3975만원이다. 10년차 이상으로 가면 30인 미만 6116만원, 500인 이상 9540만원으로 벌어졌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임금은 업황과 고용에 따른 시장 메커니즘의 결과”라며 “정부가 사업체별, 업무별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공정사회의 틀에 맞춰 기업을 압박하는 식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정부 "기업 임금결정 돕겠다"지만
경영계 "노사 갈등 부추길 것"
정부가 처음으로 민간 노동시장의 임금분포 현황을 공개한 것은 누구나 유사·동종업계의 임금 수준을 확인할 수 있게 해 기업의 임금 결정을 돕겠다는 취지다. 지난해 9월 당정은 ‘노사 갈등이 클 것’이라는 산업계 우려에도 업종별·규모별 임금분포를 공개하는 방안을 강행하기로 했다. 이번 공개안은 그 후속조치다.
노동계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줄이는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키우고 임금 수준을 둘러싼 갈등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작지 않다. 경영계 관계자는 “정부가 공정사회를 만들겠다며 이 같은 통계를 내놓은 것은 결국 기업들에 기업 규모와 학력, 업종에 따른 임금 격차를 줄이라는 무언의 압박 차원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노동시장 임금격차 완화 기대”
고용노동부가 18일 공개한 ‘사업체 특성별 임금분포 현황’에는 업종과 규모, 직업, 경력, 성별, 학력 등 6개 변수를 조합한 임금(연봉 기준) 정보가 담겨 있다. 고용부는 2016~2018년 3년간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임금 구조 부문 자료를 토대로 임금분포 현황을 도출했다. 고용부는 매년 6월 1인 이상 사업체 약 3만3000개를 표본으로 임금과 근로시간, 고용형태를 파악하는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를 한다. 이번 발표에서 임금은 연장·휴일근로수당 등 초과급여를 제외한 정액급여(기본급·통상수당)와 특별급여(상여금·성과급 등)를 합산한 금액이다.
기존에도 고용부의 임금직무시스템을 통해 직군별, 성별, 학력별 임금정보를 확인할 수는 있었으나 조합 가능한 변수가 적고 비교가 어려워 전반적인 임금 분포를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은 “원하는 정보를 일일이 검색해 비교해야 했던 시스템을 개선해 유사·동종업계의 전반적인 임금 수준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기업 규모·호봉 따라 임금 격차 커져
임금분포 현황을 보면 기업 규모와 경력(호봉)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업종에 관계없이 사업체 규모와 경력, 학력을 변수로 대졸 1년차 근로자 평균 연봉을 비교해보면 5~29명 사업장은 2852만원이었다. 100~299명 사업장은 3543만원, 500명 이상 기업은 3975만원이었다. 입직 단계에서도 기업 규모에 따라 연봉이 1000만원 이상 차이가 났다. 여기에 연차가 높아질수록 임금 격차는 더 커졌다. 10년 이상 근속직원(대졸)의 평균 연봉을 비교해보면 5~29명 기업은 6116만원, 100~299명 기업은 7414만원, 500명 이상 기업은 9540만원이었다. 영세사업장은 이렇다 할 임금체계가 없는 반면 중견기업과 대기업은 대부분 연공급 임금체계를 택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직업별로 보면 제조업 사무직은 대졸 1년차가 평균 3391만원을, 5년차가 4785만원을 받는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업은 10년차 이상일 경우 고졸 8348만원, 전문대졸 7051만원, 대졸 9139만원을 받아 학력이 임금수준에 큰 영향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김민석 고용부 노사협력정책관은 “노동시장 양극화의 원인인 임금 격차는 기업 규모와 경력, 성별 순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기피 현상 심화 우려
고용부의 이번 임금분포 공개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에도 포함됐던 내용이다. 성별 임금 격차를 공개해 양성 평등 사회에 다가가고, 기업규모별 임금 격차를 줄여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당초 노동계는 개별 기업의 임금 정보까지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경영정보 유출을 우려한 경영계의 반대와 법적 근거 부족으로 포함되지 않았다.
유사·동종기업의 임금 정보를 공유해 직무급제 도입을 촉진하고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취지는 긍정적이지만 산업현장의 노사 갈등만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직무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 없이 업종·직종별 연봉 수준만 공개하다 보니 노사 간 해석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매년 수천억원을 들여 청년내일채움공제 등 정책을 펴고 있는데, 임금격차 공개가 오히려 중소기업 취업을 막는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임금정보 공개가 구직자들의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면서도 “그러나 지나친 격차를 공개함으로써 중소기업 취업을 기피하는 현상이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백승현/민경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