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경석 (주)한화 사장은 지난해 한화 방산·화약 부문 대표로 부임한 뒤 “산업용 화약의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힘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세계 광물 경기 호조에 따른 광산 개발이 활성화할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였다. 그로부터 1년 뒤 (주)한화가 토종 전자뇌관을 앞세워 수출에 시동을 걸고 있다. 미국과 호주 등 세계 주요 광산에 뇌관과 화약을 공급하는 계약을 눈앞에 두면서다. ‘화약회사는 내수 기업’이라는 편견을 깨고 광물 채굴 설계부터 발파까지 아우르는 ‘전자뇌관’ 시장에서 수년 내에 세계 톱3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이다.
화약 수출의 핵심 전자뇌관
18일 (주)한화에 따르면 충북 보은에 있는 전자뇌관 스마트공장에서 지난 17일 생산된 완성품 중 불량품은 하나도 없었다. 연간 300만 개의 전자뇌관을 생산할 수 있는 이곳에서는 각 공정 사이에 소형 카메라 7대와 스캐너를 설치해 불량품을 수시로 잡아내고 있다. 중간 단계에서 하루 3~4개 정도 나올 수 있는 불량품은 완성품이 되기 전 완벽히 걸러진다. 발파 현장은 일반적으로 작은 폭약 여러 개를 순서대로 발파해 폭발 효과가 고루 미치도록 한다. 폭약이 하나라도 불발하면 나머지 폭약의 폭발 효과까지 차질을 빚기에 불량률을 낮추는 것이 품질관리의 관건이다.
전자뇌관은 화약 수출의 핵심으로 꼽힌다. 폭약을 터뜨리기 위해 불을 붙이거나 화학약품을 이용하는 일반 뇌관과 달리 전자뇌관은 전자신호를 통해 폭약을 터뜨린다. 폭약을 언제 발파할지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고, 기존 뇌관에 비해 진동은 40%, 소음은 10%가량 적어 대형 광산이나 도심 공사현장에서 선호한다. 전자뇌관을 납품하면 뇌관에 연결하는 다수의 폭약까지 함께 공급할 수 있어 부가가치가 크다. 그러나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해 최근까지 호주 등 선진국 업체들이 독식하던 시장이었다.
해외 선진사보다 성능 뛰어나
(주)한화는 이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2015년 호주 마이닝 업체 LDE를 250억원에 인수했다. 이후 제품 개발에 착수해 2016년 국내 최초,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전자뇌관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후발주자임에도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작년 해외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새롭게 출시한 전자뇌관 제품인 ‘하이트로닉2’는 최대 폭약 6만3000발을 동시에 터뜨릴 수 있다. 해외 선도업체보다 사용상 편리하고 대량 발파할 수 있다.
하이트로닉2는 발파 방식에 따라 도심·터널에 쓰이는 스캐닝과 노천광산에 적합한 로깅과 태깅 모드 등 세 종류로 출시된다. (주)한화는 현장 상황에 따라 세 가지 방식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하이트로닉2를 개발한 (주)한화 EIS연구팀의 박기출 팀장은 “지역과 상황에 따라 다른 발파 방식을 사용한다는 점에 주목해 범용 제품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연내 호주 플랜트 완공 예정
해외에서 이미 반응이 오고 있다. 지난달 미국 최대 화약전시회 ‘ISEE 2020’에 참가해 하이트로닉2를 선보이자 고객들의 문의가 잇따랐다. 박 팀장은 “최근 다수의 미국 업체와 발파를 시험했고, 이달 미국·호주 업체들과 추가로 시험 발파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회사 측은 이르면 내달 미국 업체와 수출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자뇌관 판촉을 활성화해 수년 내에 세계 전자뇌관 시장 점유율 25%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발파 시스템 시장은 3조원 규모였다. 여기서 25% 점유율을 차지해 세계 톱3에 진입한다는 계획이다.
(주)한화는 기세를 몰아 수출과 생산량을 더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호주 서부 퍼스에서 북쪽 272㎞에 있는 우빈 지역에 화약 플랜트를 건설 중이다. 이 공장이 연내 완공되면 호주에서만 연간 15만t의 화약을 생산하게 된다. 국내 생산의 두 배 규모다.
보은=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