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36)] 당면한 현실이 된 디지털 외교

입력 2020-02-17 16:51
수정 2020-02-18 00:11
“트위터가 없었다면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보다 지지 기반이 약했던 트럼프는 SNS에서 승리의 열쇠를 찾았다. 현재 트럼프는 6000만 명의 팔로어를 보유한 트위터 외교(twiplomacy)의 대표주자다.

오늘날 세계 30억 명 이상이 페이스북, 트위터, 스냅챗 등 SNS 플랫폼을 이용해 소통한다. 대규모 실시간 소통은 외교에도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집트, 튀니지, 예멘 등 중동 국가에서 SNS는 검열받지 않는 정보 소통 수단이다. ‘아랍의 봄’ 당시 두려움이라는 심리적 장벽을 무너뜨리고 시민들을 거리로 나서게 한 것도 SNS였다.

외교관의 임무는 국가를 대표하고, 교섭하고, 정보를 수집해 보고하고, 자국민을 보호하며, 국가 이익을 증진하는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에 이런 임무는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이었다. 미국의 아이비리그, 영국의 옥스브리지(Oxbridge: 옥스퍼드대+케임브리지대), 프랑스의 국립행정대학원(ENA) 출신 소수 엘리트는 정보를 독점하고, 그들 간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국제 문제를 처리했다. 당시 정보의 흐름은 매우 느렸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이 프랑스 주재 대사로 근무하던 시절 그가 보낸 정보가 미국 정부에 도달하기까지 약 6개월이 걸렸다. 대사들은 중요한 결정을 자신의 판단에 기초해 스스로 내려야 했다. 대사의 명칭 앞에 특명(extraordinary), 전권(plenipotentiary)이 붙은 이유다.

외교 업무 변화시킨 SNS

1990년대 냉전 종식과 인터넷 혁명은 각국의 대외정책에 변화를 초래했다. 지구촌 사건·사고가 인터넷을 통해 세계에 빠른 속도로 전파됐다. 지난 수백 년간 외교관이 독점해온 정보는 비밀로서의 효용성이 감소됐고, 해커 등 사이버 공간의 적이 위협적인 존재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SNS가 발전하자 외교 업무에 많은 변화가 발생했다. 일반인도 외교정책에 대한 의견을 교환·평가하면서 정책 수립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에 발맞춰 각국은 SNS를 외교에 활용하고 있다. 이른바 ‘디지털 외교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디지털 외교란 ‘국가가 대외정책을 추진하고, 이미지와 평판을 관리하기 위해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디플로머시(E-diplomacy), 사이버 외교(cyber-diplomacy), 트위디플로머시(twidiplomacy), 외교 3.0으로도 불린다. 정부나 대사관이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계정을 직접 운영하며 정책을 홍보하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이 기본적인 형태의 디지털 외교다.

디지털 외교는 아래 특징을 보여준다. 첫째, 외교의 중심이 정부 간 외교에서 시민 간 외교로 이동했다. 아직도 외교사절을 통한 소통은 중요하다. 그러나 시민, 다국적 기업, 싱크탱크, 시민단체, 사상가 등 다양한 행위자가 각국의 대외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각국 외교부가 공공외교에 힘을 쏟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더 중시되는 외교관의 전문성

둘째, 디지털 보안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외교 문서가 컴퓨터 네트워크에 저장되는 순간 타국 정보기관이나 해커들의 목표가 된다. 줄리언 어산지가 설립한 위키리크스(Wikileaks)나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알려지게 된 불법도청 사실이 이를 웅변한다. 오늘날 ‘전적으로 우리들만의 비밀(strictly between us)’이나 ‘오프 더 레코드’라는 말은 공허한 수사가 됐다. 양국 정상 간 비밀약속이 어느 날 뉴욕타임스의 헤드라인에 등장할 위험이 항시 도사리고 있다. 2019년 7월 킴 대럭 주미 영국대사는 트럼프 대통령을 “외교적으로 어설프고 서투르며 불안을 조장한다”고 비판하는 자신이 보낸 기밀문서가 언론에 유출되자 사임했다.

마지막으로, 외교관의 전문성이 갈수록 중시되고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보를 선별해 의미있는 함의를 도출해내는 능력이 요구되고 있다.

세계 각국은 디지털 외교에 적극적이다. 대표적인 예가 중국이다. 중국은 팔로어 수가 가장 많은 페이스북 페이지 6개 중 5개를 운영하고 있다. 예컨대 중국국제텔레비전(CGTN) 팔로어 수는 8000만 명에 육박하는데 계속 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022년 차이나데일리와 CGTN의 팔로어 수는 현재 최대 팔로어를 보유한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능가할 것이다.

1860년대 전보(電報)가 출현하자 헨리 파머스턴 영국 외무장관은 외쳤다. “큰일났군! 외교의 종말이 도래했어.” 그러나 외교는 전보뿐 아니라 라디오, TV, 팩스 등 계속되는 기술 혁신에도 살아남았다. 인터넷 혁명에도 생존할 것이 분명하다. 디지털 시대에 효율적, 성공적 외교를 위해서는 적극적이고 선제적으로 SNS를 활용해야 한다. 디지털 외교는 당면한 현실이자 미래의 도전이다.

박희권 < 글로벌리스트·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