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 15억원 아파트와 성남 분당에 10억원 아파트를 보유한 다주택자 전모씨는 최근 부동산 법인 설립을 고민하고 있다. 갈수록 늘어나는 보유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서다. 전모씨는 “법인을 설립해 아파트 명의를 분산하면 보유세가 대폭 줄어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해가 갈수록 보유세 부담이 늘어날 예정인 만큼 시행에 옮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부동산 법인 설립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법인을 설립하면 양도소득세 보유세 등 세금 부담을 줄일 수 있어서다. 원종훈 국민은행 부장(세무사)은 “실제 이익을 배당받으려면 세금 부담이 확 늘어나는 데다 부가가치세 신고 등 지켜야 할 의무도 많다”며 “지속적으로 매매업과 임대업을 하려는 이들만 법인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법인화 러시 지속
17일 통계청에 따르면 부동산 법인은 작년 11월 1374개가 신설됐다. 지난해 신설 부동산 법인 수는 9월 1045개, 10월 1264개 등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정부가 작년 ‘10·1 부동산 대책’에서 최초로 부동산 법인에 대한 규제를 도입했음에도 신설법인이 계속 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 대책에서 부동산 법인에 대해서도 개인과 동일한 수준의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받도록 했다. 올해 들어서도 법인 수는 계속 증가하는 분위기다. 조용건 법률사무소 대진 변호사는 “대출규제는 강화됐지만 양도세와 보유세 절세 혜택은 여전히 볼 수 있다”며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 부담이 늘고 있어 부동산 법인화를 문의하는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법인화에 따른 보유세 부담 경감효과는 더욱 커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서울에서 공시가격 10억원 아파트 두 채를 보유하고 있는 개인이 법인 명의로 분산소유했을 때 연간 1781만원의 보유세를 줄일 수 있다. 이 시뮬레이션을 ‘12·16 부동산 대책’ 이전 보유세제에 적용했을 때 절세 효과는 1404만원이다. 우 팀장은 “12·16 부동산 대책으로 다주택자의 보유세 부담이 늘면서 법인화의 매력도 덩달아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1일부터 도입된 다주택자 취득세 중과도 법인 증가의 주요 원인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4주택 이상 보유자의 취득세를 기존 1~3%에서 4%로 높였다.
법인 소재지가 과밀억제권역(서울, 인천, 성남, 수원 등)이면서 설립 5년 이하 법인에 대해선 취득세를 중과(7%)하지만 이를 피할 방법도 많다는 것이 세무업계의 설명이다. 법인을 과밀억제권역 외에 설립해도 권역 내의 부동산을 취득할 수 있다. 5년이 넘은 법인을 인수해 취득세 중과를 피할 수도 있다. 한 세무사는 “사실상 휴면 상태인 법인을 장부상으로 매출을 만들어 인수하면 된다”며 “다양한 편법을 통한 인수합병이 최근에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법인 설립 계속 늘 것”
보유세 부담이 커지고 있어 부동산 법인 설립이 지속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정부는 작년 12월 9억원 이상 주택에 대해 공시가격을 대폭 올릴 것이라고 예고했다. 국토부는 올해 아파트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의 시세반영률을 70~80%까지 끌어올릴 예정이다. 우 팀장은 “올해 공시가격이 발표된 이후 훨씬 많은 법인이 설립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정대상지역과 비규제지역에서 별 규제 없이 대출받을 수 있다는 점도 법인 설립 증가 요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단기매매를 하더라도 양도세(세율 40~50%) 대신 법인세(10~32%)를 내는 것도 법인의 장점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수원, 용인 등 서울 규제의 풍선효과가 나타나는 지역에서 부동산 법인 대출문의가 많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세무 전문가들은 그러나 “법인으로 명의를 넘기려면 취득세 양도세 등의 세금이 추가로 드는 데다 배당받을 때 법인세 외에 별도로 소득세도 내야 한다”며 “법인 규제도 강화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실제 매매·임대사업을 할 사람만 법인을 설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민기 기자 k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