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제주살이 꿈과 현실

입력 2020-02-17 17:57
수정 2020-02-18 00:24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제주도가 몸살을 앓고 있다. 평소 제주를 찾는 외국인의 60%가량이 중국인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관광객이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 관광협회에 따르면 호텔 렌터카 등 부문별로 관광 예약의 30~80%가 취소됐다. 지난 4일부터 외국인 무비자 입국은 일시 중단됐고 제주를 찾는 내국인도 전년에 비해 40% 이상 줄었다.

제주를 위협하는 것은 코로나뿐이 아니다. 많은 육지인의 ‘로망’처럼 여겨지던 ‘제주살이’ 열풍까지 최근 급속히 식어가고 있다. 제주도 순유입 인구 수는 2010년부터 플러스로 전환되기 시작, 2016년 1만4632명으로 고점을 찍었다. 하지만 이후 증가세가 급속 둔화돼 지난해에는 2936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월간 기준으로는 지난해 12월 24명의 순유출을 나타냈다. 2011년 12월 이후 8년 만이다. 온라인 부동산 중개업체 직방에 따르면 제주와 서울 간 인구 이동에서도 지난해 제주는 10명 순유출을 기록했다. 2009년 이후 10년 만에 서울로의 전입 인구가 더 많아진 것이다.

제주살이가 시들해진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개발 광풍이 불면서 한적했던 마을까지 펜션 카페 음식점 타운하우스 등이 들어섰고 주택가격과 임대료 폭등, 자영업 경쟁 격화, 일자리 부족, 교통 혼잡, 환경 훼손 등이 이어졌다. 이주민 대부분이 꿈꿔온 ‘자연 속에서 누리는 여유로운 삶’이 점차 어려워지면서 제주의 매력이 반감되고 있다는 얘기다.

현지 주민과의 갈등도 무시 못 할 요인이다. 섬 특유의 배타성이 있는 데다 고령까지도 농업 어업 등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주민들의 눈에 한가롭게 개를 데리고 산책이나 다니는 외지인이 곱게 보일 리 없다.

날씨 탓을 하는 이들도 있다. “휴가 때 놀러왔던 제주도는 환상 그 자체였는데 살다보니 1년 중 3분의 2는 거센 바람이 불거나 눈비가 내린다”는 하소연이다. 섬이 주는 답답함 때문에 적어도 분기에 한 번은 육지를 다녀와야 살 것 같다는 이들도 있다.

물론 현지인과도 잘 어울리고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람도 적지 않다. 지금 이 과정은 어찌보면 미디어 등을 통해 다소 부풀려졌던 제주의 모습과 현실 간의 괴리가 좁혀져 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누가 뭐래도 공항에 내려 처음 맡는 제주의 내음은 여전히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